권영준-정부 아닌 시장 주도적 구조조정이어야


동문기고 권영준-정부 아닌 시장 주도적 구조조정이어야

작성일 2009-05-21

[시론] 정부 아닌 시장 주도적 구조조정이어야

- 권영준 / 경희대 경영학 교수 -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 구조조정의 시기와 범위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전세계적 경제 위기라는 외부 충격으로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와 같은 처지였기 때문에, 응급수술을 위한 수혈(자금 공급)은 필수였다. 그런데 일단 응급처치 후에 환자를 정밀 검진해 보니 몸속 곳곳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암세포는 발견 즉시 수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수술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허약한 상태라면 일단은 미루는 것이 통례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바로 이 환자와 유사하다. 지난 6개월 동안 정부와 시장은 사투를 벌여가며 자금 공급을 통해 응급 처치에 만전을 기했는데, 이제 우리 경제 곳곳에 남아 있는 부실 기업이라는 암세포를 수술(구조조정)해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는 최근의 금융시장 훈풍이 정말로 우리 경제에 청신호를 가져오는 회복의 조짐인지, 아니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벌린 외환위기 직후에 두 번 고통을 주었던 착시 현상인지에 대한 판단과 분석이 중요하다. 1997년 11월 IMF 쇼크 직후 3주 만에 33%나 떨어졌던 주가는 이듬해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다. 97년 가을 1조 5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던 외국인들이 97년 말부터 98년 3월까지 약 4조원의 주식을 순매수해 주가가 저점 대비 69%나 상승했다. 동시에 97년 말 달러당 2000원을 웃돌던 원·달러 환율도 98년 3월에 1500원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4월이 지나면서 실물 경기가 받쳐주지 못해 기업 부도가 이어지자 외국인들은 차익실현하며 순매도로 돌아섰고, 코스피지수는 98년 6월에 사상 최저치인 280으로 곤두박질쳤다.

최근 증시와 환율은 98년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40% 정도 빠졌던 주가가 외국인 순매수에 힘입어 저점 대비 58% 상승해 1400선을 넘나들고 있고, 달러당 1500원이 넘던 환율은 1200원대로 낮아졌다. 이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실물경제가 회복할 때까지 금융시장을 통한 경기 선순환적 효과가 지속가능할 것이냐이다.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상당수 전문가들이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첫째, 이미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동결을 선언하면서 발표했듯, 우리 경제가 최악으로의 행진은 멈추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들인 선진국 경기가 추락하고 있고, 우리의 고용지표는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무역수지 흑자는 환율 효과가 대부분이지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이 아니다. 낮아진 환율 상태에서도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대부분 국가처럼 우리도 위기시에 나타나는 ‘CRIC’ 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위기(Crisis)를 당하면 모든 경제 주체들이 즉각 위기관리체제로 전환하면서 결단적 반응(Response)을 보이고 개선(Improvement)의 효과가 나타나지만, 정치적 논리가 먼저 이를 상쇄하면서 정부가 앞장서 자만(Complacency)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2차 위기를 당하게 되고, 그것이 주는 충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위기관리 초기 국면에서는 정부의 손이 절대 필요하지만, 일단 시장이 작동하고 나면 정부는 금융시장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판단할 수 있도록 물러나서 시장의 손을 지켜보는 것이 대부분의 성공적 위기관리국가가 주는 교훈이다.

[[서울신문 200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