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그래도 수출이 희망이다
<포럼> 그래도 수출이 희망이다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3월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인 43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세계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 그래도 반가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러 부족으로 환율이 치솟던 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해 발생한 이른바 불황형 무역수지 흑자라는 점과 고환율에 따른 한국 제품의 국제 가격 하락이 가져온 환율효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쟁국들보다 훨씬 나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을 애써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수출주도형 한국경제 모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수출 증대가 국내에서의 투자·고용·소비의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에 기초한 정책 처방은 종종 중소기업, 내수 지향의 서비스산업 지원을 통한 고용 창출로 나타난다. ‘고용 없는 성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중소기업, 일자리, 복지와 관련된 주장들의 정치적 호소력을 고려할 때 이 논리를 부정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는 수출 주도형 한국경제의 모델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논리를 등장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의 과소비에 기초한 세계 경제 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에 이들 시장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형 전략은 이제 세계경제의 현실과 맞지 않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세계적 불균형이 지금의 위기를 가져왔다면 이제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 경제 모델과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매우 그럴 듯해 보이는 논리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이나 수출의 종언과 주장은 너무나 과도한 논리적 비약과 한국의 현실에 대한 부정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역시 국제 경쟁력 증대와 수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너무 수출 의존적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도 너무 적게 수출해서 문제다. 한국의 1인당 수출액은 아직 1만달러도 안 된다. 그런데 독일의 1인당 수출액은 2만달러에 가깝다. 물론 내수가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영업자 비율을 갖고 있고 낮은 임금으로 인해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내수 지향의 중소기업으로 대한민국의 국민 소득을 배가시킬 수는 없다.
당면한 세계 경제위기를 해결하려면 미국인들이 덜 쓰고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더 많이 쓰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곧 수출 주도 전략의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분간 미국의 수입이 줄어드는 조정이 일어나겠지만 시장이 완전히 닫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미국 시장에 의존하던 국가들의 국내 경기부양은 또 다른 시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수출시장이 더욱 경쟁적으로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제경쟁력을 갖춘다면 세계 시장은 여전히 넓고 광활할 것이다. 여전히 수출이 효자이고 한국경제의 살 길이 거기에 있다.
물론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덮어두자는 얘기가 아니다. 수출 대기업만 살고 내수 중소기업은 허덕이는 현실은 안 된다.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성장이 필요하다. 치열한 국제 경쟁을 넘을 수 있는 경쟁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는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로 세계를 우리의 시장으로 만들어 나갈 때 해결이 가능하다.
[[문화일보 200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