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현-민주주의 위해 피 흘리겠다” 태극기 들고 독재에 맞선 4·19


동문기고 허동현-민주주의 위해 피 흘리겠다” 태극기 들고 독재에 맞선 4·19

작성일 2009-04-20

[그때 오늘] “민주주의 위해 피 흘리겠다” 태극기 들고 독재에 맞선 4·19

- 허동현 /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은 아침부터 거리를 메웠다. 나라 방방곡곡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대학생만 교문을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니었다. 서울 한성여중 2년생 진영숙은 그날 미아리에서 한 송이 꽃으로 졌다. 거리로 나가기 전 삯바느질로 학비를 대던 어머니에게 남긴 유서의 한마디 한마디가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에 나가 있습니다.”(경향신문 60년 4월 30일자)

경무대로 돌진하던 시위대의 맨 앞에 섰던 이름 모를 남학생(사진)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쏟아지는 소방차의 물줄기가 학우들을 갈라놓았지만 그는 결코 펼쳐 든 태극기를 접으려 하지 않았다. 학도들의 젊은 가슴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끓어 넘쳤다. 심장을 겨눠 총부리가 불을 뿜었지만 그들은 무릎 꿇지 않았다. 186명이 죽고 6026명이 다친 그날은 ‘피의 화요일’이 되고 말았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대학교수단의 외침에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결심했다. 12년 독재는 종언을 고했다.

목숨 던져 민주주의를 지켜 낸 그들은 둘로 나뉜 민족의 하나 됨도 이루려 했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민주주의 수호와 민족 통일. 4월 혁명은 소망하나 이루지 못한 꿈에 머물고 말았다. 학생들의 희생을 딛고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를 연 제2공화국은 5·16 군사쿠데타로 9개월 만에 나래를 접었다. 엄밀히 말해 4·19 혁명은 정권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치와 사회구조를 뿌리째 바꾸는 데는 실패한 미완의 혁명이었다.

4월 혁명을 이끈 학생층은 1950년대 민주·민족교육을 자양분 삼아 자라났다. 그들은 가슴 깊이 민족과 민주를 지고의 가치로 품었다. 그들은 현실의 독재와 교육을 통해 몸에 익힌 이상적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괴리를 간파했다. 민주주의를 들여왔지만 실천하지 못한 이승만은 아들 오이디푸스에게 죽임을 당한 테베의 왕 라이오스처럼 비극을 쓰고 말았다.

[[중앙일보 200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