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의-봄꽃과 생태 발자국


동문기고 이만의-봄꽃과 생태 발자국

작성일 2009-04-16

[매경춘추] 봄꽃과 생태 발자국 
 
이만의 (국법대원, 환경부 장관, 총동문회 자문위원)

보는 순간 끝난다 하여 `봄`일까? 봄을 안고 꽃들이 지고 있다. 예술 중 최고 걸작이라 할 대자연 속으로 열매라는 후손을 남기며 꽃들이 돌아가는 것이다. `낙화귀근(落花歸根)`의 경건한 정경을 보는 눈앞에 인간의 `생태 발자국`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린다. 인간이 일생 동안 사용한 자연환경을 비용으로 환산해 그에 합당한 토지면적으로 표시한 것이 바로 `생태 발자국`이니 그것이 클수록 지구 환경을 많이 훼손한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세계 어느 곳보다 근사한 묘지를 쓴 탓으로 전체 주거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998㎢의 현 수준에도 성이 안 찬 듯 매년 여의도의 1.2배인 9㎢가 묘지로 바뀌고 있다. 국토 훼손은 물론 재활용이 절대 불가하고 없어지지도 않는 석재로 치장한 `사자(死者)공원`을 언제까지 넓힐 것인가? 앞을 보지 않고 뒤를 돌아다보는 문명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E H 카의 종이 뇌리를 때린다.

영국의 시민단체 자연장센터(NDC)가 시작해 선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방식은 육신의 자연 회귀다. 영혼이 떠난 육신을 화장해 뼛가루를 나무 뿌리 주위 흙 속에 묻는 것이다. 뼈나 그 재가 신기하게도 흙 속에서만 분해돼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원리에 착안한 것인데, 아름답고 풍성한 숲으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선진 문화로 꽃피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자원과 자연공간을 다시 쓰지 못하게 하는 납골당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다.

고려대 연습림 안의 참나무 밑으로 겸허히 돌아간 고 김장수 교수, 한평생을 조림 녹화에 바치고 스스로의 주검까지 그가 성취한 숲 속 한 그루 나무 밑으로 돌려준 고 임종국 조림왕에 이어 달마다 해마다 자연장이 늘고 있음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크게 확산되고 있는 장기기증운동과 연결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쓸 수 있는 것은 이웃에게 사랑으로 베풀고, 쓸 수 없는 마지막 잔재는 자연으로 돌려주는 아름다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은가!

누가 오랜 조상의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며 묘를 찾는가? 나를 누대에 걸쳐 잊지 말고 경배하라고 장대한 봉분을 만들라는 것인가? 착각과 오만일 뿐이다. 한낱 초목조차도 큰 섭리와 후손들의 번창을 위하여 기꺼이 밑거름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꽃이 지면 잎들이 우거지고, 가을 단풍이 져야 새 꽃과 새봄이 더불어 온다.

[매일경제 2009-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