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실크로 포장한 중화제국


동문기고 강효백-실크로 포장한 중화제국

작성일 2009-04-15

[글로벌포커스―강효백] 실크로 포장한 중화제국

- 강효백 /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

지그재그 또는'역(逆)Z'형이라 할까. 찬란한 중화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은 팽창과 수렴을 반복하며 지역개발전략과 대외정책의 주력방향을 연계하여 전환시키는 특유의 궤적을 보여 왔다. 제1세대 마오쩌둥은 서남방 확장에, 제2세대 덩샤오핑은 동남방 건설에, 제3세대 장쩌민은 서북방 개발에 주력했다면 지금 후진타오를 비롯한 제4세대 지도층은 동북방 진출에 몰두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지역개발전략은 평등주의에 입각한 균부론(均富論)이었다. 그의 대외전략의 기조는 군사력을 앞세운 전방위적 팽창주의였으나 유난히 서남방의 영역 확장에 눈독을 들였다. 일찍이 국민당군에 쫓기며 서남부 7개 성 18개의 산맥과 준령을 넘는 대장정 시절에 품었던 야심 때문이었을까. 1959년, 그는 티베트를 침공하여 복속시켰다. 중국 전체의 8분의 1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팽창기에 접어든 대외정책

마오쩌둥의 비판적 후계자, 덩샤오핑은 1979년 동남쪽의 베트남을 침공하였다. 중국은 베트남에게 교훈을 주었다고 자위했지만 대국으로서 체면을 구긴 사실상의 패전이었다. 중월전쟁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은 '칼날의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는 도광양회(韜光養晦)로 수렴되었다. 그는 동남지역을 우선 발전시키는 선부론(先富論)을 펼쳤다. 사회주의 중국의 바다에 동남부의 5개 자본주의 섬, 즉 선전 주하이 산터우 샤먼 하이난에 경제특구를 건설하였다. 1984년에는 영국과 홍콩 반환협정을 체결하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와중에 집권한 장쩌민은 지역균형발전의 신균부론에 입각한 서부대개발을 내세웠다. 소수민족 밀집지역인 서북지역의 개발과 국경지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1996년 그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국가원수들을 상하이로 불러 '서북국경지대 군사부문 신뢰강화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회담은 2001년 우크라이나를 포함시켜 '상하이 협력기구(SCO)'로 확대 개편되었다.

장쩌민의 동향 후배로 2003년 집권한 후진타오는 서북에서 동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대외적으로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화평굴기(和平?起)의 기치를 들었다. 화평굴기의 본질은 '평화'라는 실크로 포장한 '중화제국주의'이다. 중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수렴의 제2, 제3세대와 달리 팽창의 제1세대로 복귀한 것이다. 베이징에 북한 핵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6자회담장을 마련하고 중국은 의장국으로 등극하였다. 국내적으로는 조화로운 사회건설이라는 균형발전전략의 틀을 수립하고 동북3성의 인프라를 개발하는 동북진흥과 함께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동북진흥과 동북공정이 팽창의 대외정책, 화평굴기와 맞물리며 원래의 지역경제발전이나 역사왜곡의 수세적 범위를 뛰어넘어 한반도까지 공세적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근래 중국의 동향에서 도드라지고 있다.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극대화시키고 한반도 국경문제를 선점하기 위한 중화제국의 야망을 충분히 감촉할 수 있다.

북한의 티베트化 우려돼

북한에 권력 진공상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군이 북한 내로 진군하게 되고 결국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또는 '제2의 티베트'로 전락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역대 지도층은 그들이 선택 집중한 지역의 개발과 대외정책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어 왔고 제4세대 지도층 역시 동북지역의 질적 향상을 넘어 양적 팽창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면 안 된다. 냉정한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서 원대하고도 주도면밀한 대응책을 마련하여야만 할 것이다.

[[국민일보 2009-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