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우리들의 일그러진 정치


동문기고 노동일-우리들의 일그러진 정치

작성일 2009-04-03

[fn시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정치

- 노동일 / 경희대 법학과 교수 -

한동안 야구 대표팀의 선전 때문에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김연아의 환상적 연기에 매료된 주말 역시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평소 스포츠보다 과학기술 발전에 돈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아내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경기침체의 시름에 젖어 있는 국민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준 귀중한 이벤트였다. 박찬호, 박세리의 투혼이 외환위기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사기를 충천하게 만들었던 것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잠시 흥분했던 아나운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하는 다음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여의도 뉴스가 그것이다. 연말연시 격투기 장을 방불케 하는 싸움 뉴스를 양산하던 정치권이다. 이제는 연일 구속된 정치인, 검찰 소환 혹은 소환 예정 인사들의 명단으로 손쉬운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뜩이나 우울한 소식이 넘치는 마당에 피곤과 짜증 그리고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더하게 한다. 작가의 말을 다시 빌리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정치’라고나 할까.

 재임 중 드물게 솔직한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근 고백이 떠오른다. “정치 절대로 하지 말라. 영광은 짧고 고통은 길다. 정치를 위한 돈 때문에 추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가족도 친구도 잃어버리고 외롭고 힘든 말년을 보내야 한다.” 그런 정도의 발언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예감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인들만 해당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 정치에 대한 또 한번의 솔직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정치든 돈정치든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난하고 매도하는 의견도 차고 넘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끊임없이 혐오하고 망신 주고 물갈이를 해도 정치가 변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론을 외치는 세력들이 조만간 또 다른 심판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보면서도 정치권은 여전히 투쟁, 심판, 음모 등 철 지난 구호만 외치고 있으니 딱하다. 이처럼 우리의 대표를 뽑아 그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지금의 제도가 마음에 안 들지만 딱히 더 나은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직접 민주정치가 활발한 미국 역시 고민은 마찬가지다. 주민들이 직접 법률을 제정·개정함은 물론 주에 따라 헌법개정안까지 발의해 투표에 부칠 수 있는 게 미국이다. 일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직접 민주정치의 결과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최근의 유력한 평가다. 소수인종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의 폐지, 인종통합정책의 폐지 등 대중에 영합하는 법률들이 주민 발의에 따라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이념은 신성하지만 직접 민주주의의 결과는 결국 포퓰리즘으로 귀착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국민이 인터넷 등을 통해 직접 참여하는 정치가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익명의 인터넷이 건전한 정치참여의 장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광장에 모이는 촛불도 비판세력은 될지언정 건전한 대안을 마련하는 장치가 될 수는 없다. 결국 현재의 제도를 고치고 개선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차선책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에서 국회개혁 방안도 내놓은 것이 있다. 국회와 정당을 개혁하자는 18대 초선의원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국회를 고치고 정당을 개혁해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바라보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론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안도 있다.

 핵심은 역시 이를 행동에 옮기는 실천력이다. 역사에서는 위기가 고조될 즈음 용기 있는 행동이 나오곤 했다. 이번에도 기득권에 매이지 않은 참신한 세력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에 입문할 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나선 이는 없을 것이다. 초심은 아마도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134명이나 되는 초선의원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물줄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정치’가 ‘우리들의 행복한 정치’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가닥 희망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파이넨셜 200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