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서혜경 - 문화와 외교
[매경춘추] 문화와 외교
- 서혜경 / 피아니스트ㆍ경희대 교수-
며칠 전 한 일간지에서 '대통령과 아트 외교'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술의 하이테크 시대를 넘어서 문화 예술로 인한 하이터치(high touch) 시대로 접어드는 요즈음, 대통령이 미술작품을 들고 아트 외교를 펼치는 모습을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올바른 방향 제시에 공감하고 외국 정상들의 사례가 부러운 기사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득한 꿈만 같은 얘기다. 미술작품은 접어두고라도 그림보다 훨씬 감각적인 음악에 대한 소양도 없는 대통령과 그 휘하 직원들에게 '아트 외교'를 주문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상당한 음악적 식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과 그 안주인들께서 얼마나 음악에 대해 무심했으면 청와대에 피아노 한 대도 없었겠는가? 몇 번을 청와대에서 연주한 적이 있지만 번번이 피아노를 빌려서 방문했다.
지난 2월 피아노 두 대가 납품됐다고 들었지만 수십 년간 청와대에 피아노가 없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문화적으로 창피한 일인가. 그리고 피아노를 마련했으니 음악회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무슨 음악회냐는 한 마디에 머쓱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는 더욱 고약한 일이다. 음악이 여유 있는 사람들의 여흥으로만 치부돼서는 안 된다. 음악은 생활의 활력을 돋우는 영양제이고 창조의 자극제여야 한다.
옛날 선비들은 글과 음악은 물론 활쏘기까지도 선비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리고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세상이다. 교양인으로서 문화적 소양도 필수지만 문화와 예술은 시대의 화두요, 가장 친인류적인 무공해 수출품일 수 있다.
음악은 만국 공통의 언어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파동들 중 하나다. 나에게 소리 좋은 피아노 한 대만 준다면 어떤 외국의 정상도, 통상각료도 심정적으로 설득해 낼 자신이 있다. 문화를 국가 홍보의 척후병으로 사용하고 예술을 통상외교의 첨병으로 활용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의 더욱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문화 예술의 활용을 부탁하고 싶다.
[[매일경제 200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