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지-北, 즉각 대화 테이블로 나서라


동문기고 우승지-北, 즉각 대화 테이블로 나서라

작성일 2009-03-06

<포럼> 北, 즉각 대화 테이블로 나서라
 
- 우승지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2일 오전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유엔사 사이에 장성급회담이 열렸다. 2002년 9월 이후 6년 만에 양측이 마주앉은 것이다. 북측 제의로 열린 이날 회담에서 북한은 키 리졸브 훈련의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북한은 국방부에 보낸 전통문을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미군의 도발과 위반행위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북한이 애써 한국을 제쳐두고 미국과 직접 상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꾸준히 대남 비방의 수위를 높여갔고 급기야 무력충돌의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결코 동떨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잘 짜인 각본에 의해 연출되고 있는 듯한 징후가 강하다. 북한은 미국을 유인하고, 한국을 견제하며, 내부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높은 긴장이 유지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평양은 최고 지도자의 건강 이상 징후가 포착되는 등 정권의 취약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계속된 자극에도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와 직접적이고 강력한 대북 정책을 시사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등장도 북한이 경직된 행동을 보이게 하는 요인들일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고조시킨 뒤 한국을 제쳐두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 관계개선·평화체제·군축·경제지원 등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의제를 놓고 협상에 임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전략이 그대로 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전략을 간파하고 대북 문제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한 한·미 양국 사이를 벌려 놓으려는 북한의 기도는 성사 난망이다.

미국은 이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방한 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면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논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평양 정권이 핵 포기에 관한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이 확인되면 미국이 관계개선에 속도를 낼 수 있음을 비춘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클린턴 장관은 또한 북한이 바라는 평화체제 구축과 에너지, 식량 등 경제 지원에도 인색하지 않을 뜻을 비쳤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존과 공영의 길을 걷자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조건 없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대화를 갖자고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의 조평통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 대통령의 남북대화 제의를 거칠게 거부하고 나섰다. 한국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높였다. 실망스러운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조평통이 이 정권이 물러나야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 사이에 갈등을 조장해 보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클린턴 장관이 서울에서 관계개선 용의를 밝히고, 이 대통령이 기념사를 통해 즉각적인 대화를 제안한 것은 서울과 워싱턴이 동시에 평양에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북한의 경직된 태도와 위험한 불장난이 한반도의 여러 문제들을 풀어줄 리 만무하다. 평양은 무모하게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는 서울과 워싱턴의 손을 잡아야 한다. 한국과 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고, 미국과는 비핵화와 관계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진솔하게 전개할 때 고립과 주변국의 우려가 동시에 해소될 수 있음을 평양 당국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200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