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차이메리카’와 한국


동문기고 강효백-차이메리카’와 한국

작성일 2009-02-18

[글로벌포커스―강효백] ‘차이메리카’와 한국 

- 강효백 /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미국발 금융위기 쓰나미로 세계경제의 지축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유엔회원국 명단은 물론 세계지도에도 없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나라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을 합체한 이 가상의 제국은 2007년 하버드대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에 의해 탄생됐다.

차이메리카의 동부(중국)는 저축에 몰입했고 서부(미국)는 소비에 탐닉했다. 동부는 상품을 사주는 서부 덕분에 고속성장을 지속했고 서부는 동부 덕분에 대출을 받아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렸다. 중국과 미국을 한 몸으로 본 차이메리카는 서구우월주의의 이분법에 기반한 중국붕괴론, 중국봉쇄론 등을 되풀이하던 서방 주류학계에서 신선한 추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해 9월, 퍼거슨 교수는 10년간 유지된 차이메리카는 끝나 가고, 20년 내에 중국의 지배하에 세계 평화가 유지되는 '중국패권'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두 달쯤 지난 11월, 그는 다시 차이메리카마저도 곧 해체되고, G1 중국패권시대가 도래하니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한 다음 날 베이징으로 가 중국과 G2회담을 열라고 주문했다.

퍼거슨 교수는 학자적 냉철함을 잃고 중국을 과대평가했다. 미국이 돌연사하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패권국가로 등장할 날은 요원하다. 중국은 외환보유고 1위(미국 국채보유액 1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열악한 환경과 인권상황, 극심한 지역격차, 만연한 가짜와 부패는 한심한 수준이다.

"우리의 마약은 바로 중국산 상품과 중국의 현금 투자였다." 지난 연말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에 나온 구절이다. 이 기사를 변곡점으로 위기 본질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월가의 탐욕에서 비롯됐다는 '자성론'에서 중국 탓으로 돌리는 '중독론'으로 전환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통해 중국의 위안화 환율조작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국 국채를 더 이상 사지 않을 수 있다고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중·미간 환율논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설령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한다더라도 미국경제와의 동조 붕괴로 이어져 그 파장이 전 세계에 미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름만 사회주의국가일 뿐, 실제는 자본주의 개발독재정이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국시(國是)로 삼아 왔다. 앞의 '사회주의'는 뒤의 '시장경제'를 장식해주는 수식어로 변질됐다. 사회주의를 마르크스 식으로 접근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잦아들었다. 중국의 핵심 브레인들은 미국의 힘은 자유경쟁에서 나온다고 분석하면서 중국 시장경제의 본질도 '자유경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지 오래다. 중국은 미국의 풍만한 몸통에서 민주주의 정치제도(뼈)는 추려 버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살)를 취해 왔던 것이다. 시나브로 중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 한 몸 같은 공생체가 됐다.

글로벌 경제의 시련은 중·미간 상호중독의 금단현상이라기보다 차이메리카라는 자본주의 공생체가 겪는 성장통이다. 차이메리카는 끝난 게 아니라 시작한 것이다. 지금 붉게 물든 세계자본주의의 하늘은 저녁노을이 아니다. 새벽노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차이메리카는 위기일까 기회일까. '태평양을 건너온 물고기는 살이 단단해 맛있다'는 말이 있듯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면 뒤따르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강한 내성이 길러진다.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라.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지중해 시대에 로마제국의 흥륭을 이루었던 이탈리아와 너무도 닮아있지 않은가.

새벽이 오기 직전의 어둠은 더욱 짙다. 바야흐로 시작되는 차이메리카의 신(新)태평양 시대는 찬란한 한국의 여명을 알리는 자명종이다.

[[국민일보 2009-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