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권영준-거래소 공공기관지정은 전형적 후진정책
[헤럴드포럼] 거래소 공공기관지정은 전형적 후진정책
- 권영준 / 경희대 교수 -
거래소 경영 방만 이유
공기업 지정은‘교각살우’
금융감독 검사 강화 통해
자발적 혁신 추진해야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최우선 정책목표를 두고 상징적으로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함과 동시에 개각을 통해 집권 2년차를 준비하고 있다. 과연 MB정부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여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의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상당수의 정책에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또 다른 모순적 정책의 정부이기 때문이다.
인사정책에서 나타나는 역(逆)선택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위험관리를 통해 BIS비율을 높이라고 하면서 잠재부실이 높은 기업들에 더 많은 대출을 강요하고 있다.
더욱이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구호 아래 강력한 규제 완화를 주장하면서도 선별적 규제 강화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모순이 시장을 힘들게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일고 있는 증권선물거래소에 대한 공기업 지정 논란이다.
정부는 낙후된 자본시장의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2월로 확정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통법을 시행하면서 이와는 정반대의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래소를 공기업으로 지정할 경우 외국투자자들은 특정 기관에 대한 정부의 간여가 아니라 우리나라 자본시장 전체에 대한 정부 통제로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시장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저하되어, 외국인 투자가 현격히 감소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 매도로 주식투자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기업의 경영 선진화를 위해 민영화를 중점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가 새삼스럽게 20년 전에 완전히 민영화된 뒤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세계 10위권으로 발전한 거래소를 공기업으로 다시 지정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정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오직 정부가 과반 지분을 보유한 슬로바키아 외에는 모든 선진국 정부가 전혀 간여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 거래소를 공기업으로 지정하려는 이유는 거래소의 수입 중 절반 이상이 독점적 수입이고 경영이 다소 방만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거래소의 독점 상태는 경쟁 관계에 있던 증권거래소, 코스닥 및 선물거래소를 대형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2005년에 합병하면서 형성되었다.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쟁 관계에 있던 세 시장을 불과 4년 전에 통합하고 이제 와서 독점이기 때문에 공기업으로 지정한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문제는 시장 원리인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자통법 시행과 궤를 같이하는 해법이다.
현재 국회에서 자통법 원칙에 따라 경쟁 원리를 살리는 거래소의 허가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고 정부에 대해 4월까지 공공기관 지정을 유보토록 요청했다고 하니, 국회의 입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거래소에 대한 공기업 지정이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기업에 대한 과도한 정부의 간여로 헌법 위반의 소지가 높다는 대부분 법 전문가들의 의견을 감안해서라도 결코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
거래소의 경영이 방만하다는 지적은 자율 경영과 독립적 임원인사에 따른 정부의 정서적 문제 제기로 보이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공기업 지정이 아닌, 현재의 금융위원회 감독과 금융감독원 검사 강화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정도이다.
이러한 시장친화적 정공법을 배제하고 위헌적 요소는 물론 부작용이 심대한 공기업 지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잘못이다.
끝으로 거래소도 스스로 공기업에 준하는 경영 혁신을 자발적으로 추진하여 공기업 지정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이 우리 자본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길이고, 현재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수천만 국내외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인지 정부와 거래소가 현명하게 판단하길 기대한다.
[[헤럴드경제 200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