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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실-신정아, 허경영, 미네르바의 공통점
[칼럼] 신정아, 허경영, 미네르바의 공통점
- 최혜실 교수 /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신정아의 가짜 학력 조작 사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녀의 능력문제였다.
대학교 중퇴의 여자가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고, 신문 잡지 등의 컬럼도 뛰어났으며 학회에서 영어 사회도 보았다.
그렇다면 교수 자격에 박사학위가 별로 의미가 없지 않는냐는 질문이었다.
교수는 학술논문으로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답변했으나 그런 전공에서는 큐레이터로서의 현장경험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실력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작년 3월부터 다음의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수 백 편의 글을 올리면서 부상한 그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예견하는 등 환율, 부동산, 주식 등에 대해 예리한 분석과 예측을 해왔다.
물론 전문용어 설정이 틀리거나 논거가 부정확하다고 지적하는 소수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식견에 탄복했고 경제 전문가들조차도 아직까지 그의 글이 지닌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대부분이 짜깁기이거나 남의 글을 베낀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문제는 전문가들조차도 그 글의 허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미네르바의 구속 죄목은 정부가 달러 매수 금지를 명령했다는 허위사실 유포, 전기통신법 위반에 국한되게 되었다.
짜깁기한 글을 전문가들도 식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고와 전문대를 졸업한 사람도 인터넷을 검색 수집한 정보로 전문가 못지않게, 아니 전문가의 눈을 속일 만큼 경제전망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대학 중퇴자가 예일대 박사보다도 미술시장과 전시기획에 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근대의 지식체계, 교육체계가 더 이상 이 시대에 맞지 않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예감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용이해지면서 전문가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폭발하는 정보의 생산과 교환, 소비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 정보가 진실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보가 소통되는 그 방식 자체가 중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너무나 많은 정보가 생산, 교환되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불투명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진실을 구명하는 행위를 뒷전으로 놓아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있고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진실에 비해 음모론이 더 신빙성있게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소통되는 정보의 진실여부보다, 자극성, 재미, 극적인 요소에 더 많은 비중이 가해진다.
허경영의 인기 비결도 여기서 찾아진다. 이병철 회장의 양아들까지 역임하며 박정희 대통령 때 캄차카 반도를 사러 다녔고, 박근혜 전대표와 약혼까지 했다는 약력을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88만원 백수시대, 경제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던 시점, 누구나 간절히 원하던 경제대통령의 모습을 과장되게 구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웃음과 기대를 선사한 그의 소통방식 자체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정보 폭발의 시대 진실에 대한 탐구의 노력을 놓아버리는 접점에서 허경영의 거짓된 정보는 진실과 거짓의 영역을 벗어나서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 방식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신정아의 학력 위조 사건이 이 시대에 대학이 원하는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면 허경영의 사례는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의 참과 거짓이 구분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것 자체를 즐기려는 허무주의의 탄생을 의미한다.
반면 미네르바의 경우에는 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의 운용 방식의 변화와 지식을 얻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허무주의의 두 가지 요소가 한데 엉켜 흐르고 있다. 끝없이 링크되는 글 속에서 인용이 인용을 낳는 상호텍스트성은 인터넷의 가장 큰 특성이다.
짜집기가 글쓰기가 되고 다시 읽기가 쓰기가 되는 편집과 댓글 속에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는 흐려진다. 그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의 포기가 이미지가 주는 쾌감을 즐기려는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곳에 미네르바가 있다.
[[아시아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