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강효백-중국,이미 하나가 됐다
[글로벌포커스―강효백] 중국,이미 하나가 됐다
- 강효백 /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
작년 12월31일 후진타오 중국주석이 대만에 대해 군사 교류를 시작하자고 전격적으로 제안했다. 후 주석은 '대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 발표 30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에서 대만에 대해 기존의 경제 분야 교류를 넘어 군사 분야에서 접촉과 교류를 시작하고 군사안보상 상호 신뢰 시스템을 구축하여 적대관계를 종식하자고 말했다.
1979년 중국은 '대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을 발표하고 무력을 통한 대만 통일정책을 평화통일로 전환한 이후 대만의 독자적인 정부조직과 군대유지를 보장하는 등 획기적인 양안(兩岸)교류를 제안해 왔다. 대만에 대하여 홍콩과 마카오의 흡수통치원칙인 일국양제(一國兩制)보다 한 차원 탄력성이 강한, 사실상의 '일국삼제(一國三制)'를 제시해 온 것이다.
一國三制 목표 군사교류 제안
군사교류로써 대만과의 일국삼제 방식의 통합을 견인해내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후 주석의 제안에 대한 대만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마잉주 대만 총통은 1월1일 신년연설을 통해 대만과 중국의 양안관계 개선이 주권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전체 중국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대만 최대 일간지 연합보(聯合報)도 신년사설에서 후 주석이 보낸 값진 연하장에 대해 대만은 전방위 전천후 화해시대를 가속화하기 위한 행동으로써 답장을 대신하자고 강조했다.
양안 관계는 작년 5월 대만의 국민당 집권 이후 한층 가까워졌다. 국공내전 이후 60년 만에 중국과 대만은 해운 직항, 항공 직항, 우편 직통 등 대삼통(大三通)의 양안 1일생활권 시대를 열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최근의 양안 밀월관계는 정치지도자의 일방적인 화해 제스처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일회성 이벤트에 의해 단숨에 뜨거워진 것은 아니다.
지난 30년간 중국과 대만은 점진적 실질적으로 경제 사회 문화적 통합을 이루어갔다. 대만독립을 공언하던 민진당 집권기간에도 꽁꽁 얼어붙은 겨울강 밑바닥에서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정치 군사 부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신뢰의 깊이가 더해갔다.
지난 30년간 대만에서 중국대륙을 방문한 총인원 수는 5000만 명이 넘는다. 대만 인구의 배보다 많고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다. 2008년 말 현재 7만2000여 개의 대만기업이 중국 방방곡곡에 진출했으며 양안의 연간 교역액은 1300억 달러를 초과했다.
중국 당국의 대만과 홍콩기업 우대정책은 내국인 대우 정도가 아니라 초(超)내국인 대우 수준이다. 오죽하면 대만과 홍콩기업들이 진출한 지역에 한국 기업이 투자했다간 백전백패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을까. 내가 상하이와 베이징 장기체류시절에 임차한 주택의 소유주도 각각 대만사람과 홍콩사람이었다. 그들은 간혹 '대만해협에 일촉즉발 전운 감돌아' 식의 서방 매체와 그것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외신보도를 접할 때마다 "SF 소설보다 더 황당한 소리 "라며 실소를 참지 못했다.
정신적으론 통일된 超大國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중국과 독립관세지역인 대만, 홍콩, 마카오는 각각 회원국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유엔에서는 중국의 자리는 하나다. WTO와 달리 유엔에서는 오직 국가만이 회원국이 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중국을 약소국가라고 하지 말라, 중화인민공화국을 보라, 우리 중국을 독재국가라고 하지 말라, 대만을 보라, 우리 중국을 후진국이라고 하지 말라, 홍콩을 보라."
작년 말 베이징에서 만난 대만친구 린(林) 교수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 중국을…'이라는 말머리가 그의 입에서 연거푸 나오는 동안 얼핏 나는 무언가를 봤다. 그것은 이미 통일된 거나 다름없는 일체다면(一體多面) 국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회전목마였다.
[[국민일보 200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