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균태-공영방송으로 남으려면


동문기고 한균태-공영방송으로 남으려면

작성일 2009-01-12

[시론―한균태] 공영방송으로 남으려면 

- 한균태 (신방74/ 27회) / 경희대 교수·언론학 -

기축년 새해가 밝아왔지만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나라 안팎의 사정을 감안하면 암울하고 착잡한 심정만 있을 뿐이다. 청와대가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선정했을 만큼 우리 사회는 전시상황에 버금가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어떻게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만에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을까.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한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도 책임 부분에서 비껴나갈 수 없다.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정치적·사회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 통합커녕 선동자 역할만

지난해 한국사회를 3개월 이상 뒤흔들어 놓았던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MBC의 'PD수첩'에 의해 촉발되었다. 공영방송의 책무인 공정성과 객관성의 기본원칙을 저버린 데다 사회를 파국 직전까지 몰고 간 선동자 역할을 상기한다면 신랄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광우병파동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완전히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방송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며 파업을 벌였다. 파업의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메인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총동원해 방송법 개정을 반대하는 논리만을 전달하며 편파적이고 정파적 인 모습을 또다시 드러내고 있다.

MBC가 진정 공영방송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지금과 같이 자사 논리만 옹호하는 일방적 보도행태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장외투쟁과 편향적 보도가 계속된다면 신뢰는 끝없이 추락할 것이며 결국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실상 광우병파동에서 선정성이나 편파성 논란보다 더 큰 문제는 사건 이후 MBC가 보여준 안하무인격 태도와 무책임한 자세였다. 사실 조작이나 오역 실수에 대한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대책도 제대로 내놓지 않은 것이다. 실질적 소유주인 국민을 얕잡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점에서 MBC는 '길리건 사태'를 겪었던 영국의 BBC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2003년 당시 길리건 기자는 BBC 라디오4의 뉴스토론 프로그램인 '투데이'에서 이라크 대량학살 무기에 대한 정부보고서를 문제 삼았다.

익명의 정보원이었던 켈리 박사의 자살시체가 발견되면서 영국 언론 사상 초유의 정부와 언론사 간 전면갈등이 촉발되었고, BBC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게 되었다. 결국 해당 기자는 BBC를 떠나고 이사장(개빈 데이비스)과 사장(그렉 다이크)도 사임했다.

여기서 핵심은 해당 기자나 관리자들이 도덕적 책임을 졌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BBC가 사회적 비판을 겸허히 수용했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뉴스개선연구팀을 구성해 뉴스제작과정과 보도관행의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대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았다는 데 있다. BBC가 국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 불편부당하게 보도했다는 역사적 전통에 기반한 뉴스의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변화를 위해 스스로 과감하게 메스를 댄 것이다.

자기 성찰과 전면 개혁 절실

MBC도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뼈아픈 자기성찰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또 이를 계기로 강도높은 조직개혁과 함께 방송저널리즘의 원칙, 관행 등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더불어 공정성 혹은 객관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세밀한 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엄격한 내부 감시장치도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면적 개혁을 통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하여 대립되는 주장들을 균형있게 보도하려는 노력을 성실하게 보여줄 때 비로소 어떠한 외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정명(正名)을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