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오바마의 ‘흑백통합 티켓’


동문기고 도정일-오바마의 ‘흑백통합 티켓’

작성일 2008-11-10

[시론] 오바마의 ‘흑백통합 티켓’

- 도정일 (영문61/ 13회) /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미국이 흑인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신’조차도 깜짝 놀랄 사건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과연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라는 의문은 대선 기간 내내 전 세계 사람들이 주시했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인들 자신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안 될 거야, 백인이 어떤 사람들인데”라고 세계의 관전자들은 생각했고, 오바마를 지지한 미국인들도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소위 ‘브래들리 효과’라는 것의 가능성 앞에서 전전긍긍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결국’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건국 232년 만에,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45년 만에, 흑인차별을 위헌 판결한 대법원 결정 40년 만에 ‘결국’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는 데 성공한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가 모처럼 세계에 과시한 역사적 성취이고 위업이다.

-美 국가브랜드 개선 황금기회-

이 성취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내외 국가 이미지 개선이라는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8년간 부시 정권 하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미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할 황금기회가 온 것이다. 힘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불량 카우보이 깡패국가, 아부 그라이브, 관타나모 같은 포로수용소는 물론 사회 운영 전반에서 평등인권을 묵살한 나라, 민주주의 원칙을 어기고 민주체제를 위협해온 소수 전횡국가, 신자유주의와 부자 감세정책 등으로 불평등의 항구 제도화를 추진한 국가, 국제사회를 따돌리고 북한, 이란 등을 고립시키려다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외톨이 골리앗, 환경문제를 시궁창에 내던진 오만한 경제대국--몇 가지만 꼽아도 부시 정권 8년이 세계에 보여준 ‘미국 브랜드’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85%는 “미국이 잘못되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오바마 당선은 이 망가진 국가 브랜드를 한 차례 손질할 기회를 미국에 주고 있다. 그 ‘손질’ 속에는 사회통합의 가능성 제고라는 작업도 포함된다. 흑백 인종차별로 인한 사회 긴장, 갈등, 분열은 미국 역사에 심어진 저주의 씨앗이자 2백년 넘게 미국이 풀지 못한 사회적 고통의 진원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자유, 평등, 정의라는 미국 건국이념은 공염불에 그친다. 링컨 정부 이래 역대 정권은 평등법 제정 등의 방식으로 흑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에 의한’(de jure) 차별금지와 현실에서의 ‘사실상의’(de facto) 차별철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문제다. 법으로 아무리 차별을 금지해도 관습, 태도, 규범, 편견에 의한 차별은 여전하다는 것이 미국의 경험이다. 흑인 대통령의 등장은 인종문제에 관한 미국사회의 통념과 편견에 일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미국민들 자신이 “우리는 평등국가”라는 자기 이미지와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그 꿈의 아침을 열어-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부분은 오바마 당선이 ‘흑인 티켓’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흑백 통합의 티켓’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오바마가 성공한 것은 백인 유권자들이 오바마 마차를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플로리다 같은 전통적 공화당 우세 지역이 오바마를 지지한 것은 이 통합 티켓의 위력을 보여준다. 오바마는 흑인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흑인의 대통령’은 아니다. 그는 인종분할 아닌 인종통합의 비전으로 당선된 사람이다. 공화당 후보 캠프가 “오바마는 흑인이야”라면서 분열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동안 오바마는 자신이 어떤 소수 인종의 후보도 인종분할의 후보도 아닌 통합의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다.

물론 흑인차별을 철폐해나가는 일은 오바마의 향후 과제 가운데 큰 것의 하나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말한 ‘나의 꿈’은 오바마의 꿈이기도 하고 그가 생각하는 ‘미국의 꿈’이기도 하다. 이 꿈이 오바마 집권 기간에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오바마 당선이 그 꿈의 아침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2008-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