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인종의 벽을 넘다
[릴레이 시론] 인종의 벽을 넘다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학 -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미국을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미국인들이 대단한 선택을 했다. 인종 간 차별과 불신을 넘어 이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 내 소수파인 유색인종들이 강력히 지지했고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국민이 그의 당선을 간절히 바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오바마의 당선은 피부색깔과 인종에 따른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소망이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다.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매우 낮고, 무엇보다도 현재 진행 중인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집권당인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에게 아주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에 비해 미국 의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위기 극복을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한 점이 오바마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부시 대통령의 실정과 금융위기가 오바마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셈이다. 또한 미국 사회의 인종구성이 급속히 변화해왔고, 인종 간의 태도가 개선돼 온 점도 흑인 후보인 오바마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승리는 결국 그가 성취한 것이다. 두 가지의 중요한 요소 때문이다. 첫째, 그의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가 이념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 갈라지고 찢어진 미국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그를 민주당의 스타로 만들고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건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연설이었다. 당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존 케리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전당대회의 찬조연사로 나온 오바마는 미국의 단합을 강조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진보적 미국도 보수적 미국도 없고 미합중국이 있다. 검은 미국도 흰 미국도 라틴계 미국도 아시아계 미국도 없고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 연설로 일약 전국적 명성을 지닌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인종문제에 관한 오바마의 이러한 태도는 백인들의 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둘째, 인터넷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일반 유권자들을 파고들어 조직화한 그의 선거전략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는 엄청난 자원봉사자들을 이끌어 냈고 다수의 소액기부로 선거자금을 모집했다. 오바마의 선거전략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고, 미국의 선거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젊은이들을 포함하여 선거에 무관심했던 많은 미국인들을 정치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의 대세론이 확산되고 공고하게 되도록 만들었다.
오바마의 당선은 유색인종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고, 세계인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고치도록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엄청난 도덕적 힘이다. 그리고 세계의 리더로서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아버지가 케냐인이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고, 중간 이름이 후세인이라 중동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며, 어린 시절에 4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시아인들로부터도 관심을 끈다. 또한 어머니가 백인이고 백인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백인들로부터도 거부감을 덜 받는다. 인간 오바마가 갖는 이러한 특성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로 하여금 인종 간 차별을 없애고 국제 평화와 협력의 증진에 기여할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스스로 인종의 벽을 넘어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되었듯이, 도덕적 권위를 회복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미국 내부에서나 세계적 차원에서 인종 간의 벽을 허물고 국제평화와 협력의 무드를 조성하는 세계적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세계일보 2008-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