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권영준-증권시장 ‘후진화’를 우려한다
<기고> 증권시장 ‘후진화’를 우려한다
- 권영준 / 경희대 교수·경영학 -
9월18일 한국증시는 2004년 이후 4수 끝에 대만증시를 제치고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국지수’ 편입이라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선진국지수 편입은 한국 자본시장의 제도와 환경이 선진국형에 가까웠음을 인정받은 것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도 앞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로부터 사흘 뒤 감사원은 증권선물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것을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증권예탁결제원을 감사하던 중 거래소의 방만한 경영 행태가 발견됐기 때문에 정부가 경영 감시와 증권시장에 대한 통제 기능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은 단순히 일개 기관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 무한경쟁의 세계 금융시장 환경에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란 점에서 감사원의 이번 조치는 교각살우를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첫째, 감사원의 권고는 국제 금융시장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시각으로 증권시장을 재단하는 결정으로서 금융정책 당국과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나아가 국제적 정합성(Global Standard)에도 반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정부는 시장과 자율 경쟁에 의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1988년 옛 증권거래소를 민영화했고, 2005년 통합거래소 출범 때에는 완전 민간 주식회사제로 전환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공공기관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은 급속한 금융 환경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지속적인 경쟁력 향상을 추진해온 정부의 일관된 정책과도 정반대 방향이다.
둘째, 거래소 자회사 감사를 통해 드러난 골프 접대비 과다 사용 등 일부 방만 경영 사례를 이유로 외국인 투자 비중과 회원 참가 비중이 30% 이상인 국제화된 시장을 공공기관으로 지정, 통제하겠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다. 이미 증권거래소법, 금융감독원의 검사권 등 거래소의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은 충분히 갖춰져 있으며 필요시 현 제도의 틀 안에서 충분한 보완을 통해 효율적인 외부 통제를 할 수 있다.
셋째, FTSE 선진국지수 편입은 시장 운영이나 기업 지배구조 등 측면에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전제이기 때문에 1년 후로 예정된 지수 편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경영자 선임과 경영 방침 결정을 포함, 사실상 시장에 정부가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관치금융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효율성과 투명성이 생명인 증권시장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FTSE 지수보다 1.5배나 더 큰 펀드 규모를 가진 지수인 모건스탠리 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넷째,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어느 나라에서도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분류, 정부가 거래소 경영에 관여하는 사례는 없다. 해외 기업 상장 유치와 해외 자본의 국내 시장 유치, 외국 자본시장으로의 진출 등을 통해 국제 금융 중심지로 나아가야 할 마당에 국내에서 증권시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국가 경제 발전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자본시장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증권선물거래소는 통합 이후 관치금융이라는 역사적 굴레를 벗어버리고자, 인사 개입의 배제를 통한 경영 자율화는 물론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몸부림쳐 왔다. 그런데 선진화를 국가 발전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이명박 정부에서 오히려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이라는 후진적 조치를 감행한다면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와 불행이 초래될 것이다.
더욱이 항간에서 들리는 이사장 선임과 관련한 잡음으로 그동안 감사원 감사 및 검찰 수사에 대한 오해를 더욱 증폭시키는 정치적 비난만 난무할 우려가 있으므로 정부는 신중한 판단을 내려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문화일보 2008-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