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재욱-한국경제 기초체력 부실해지고 있다
<포럼> 한국경제 기초체력 부실해지고 있다
- 안재욱 (경제75/ 28회) / 경희대 교수·경제학 -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기업은 규제 완화를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1년반 또는 2년 후를 대비해 선행투자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제 발전에 기업의 투자 증가가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로서 부질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 여러 가지 호의적이지 못한 여건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준다면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투자는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투자를 하더라도 일회성에 그치기 쉽다.
지금 우리의 경제 문제는 일시적인 경기 침체의 양상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지난 10년의 좌파 정권에 의해 구조적으로, 근본적으로 척박해진 경제 및 기업 환경에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회성에 불과한 기업의 투자로 경제가 살아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고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기업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정부가 세제, 금융 등의 각종 특혜가 중소기업의 도약의지를 가로막아왔던 것을 인식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중소기업 분류기준을 고치겠다고 하지만, 지난 6개월의 정부 행태에 비춰볼 때 기업 활동 장려를 위한 규제 혁파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규제 완화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대기업 법인세를 인하키로 했다가 그 시행 계획을 1년 연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만 봐도 그렇고,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강조해오다가 ‘선 지역 발전, 후 수도권 규제 완화’로 후퇴한 것을 봐도 그렇다.
최근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동시에 적자로 돌아서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환율 변동이 심해진 것도 지지 부진한 규제 완화로 인해 야기된 경제 기초체력의 허약함과 무관하지 않다. 환율이 변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환율은 외환시장의 수급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변동이 너무 크다면 문제다. 환율 변동이 크면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의 생산 활동과 국민의 소비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환율의 변동과 관련해 바람직한 것은 안정적인 변동이다. 환율의 안정적 변동은 궁극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에 달려 있다. 원화 가치 변동이 크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기초체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980년부터 지난 4분의 1 세기 동안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경험한 것은 단 세 번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달러 가치가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 원인은 그 기간에 자본수지 적자 역시 단 세 번에 불과했던 데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자본수지 흑자에 의해 상쇄됐던 것이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적자가 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흑자이면 화폐 가치가 올라간다. 미국이 대부분의 기간에 자본수지 흑자를 이뤘던 이유는 생산성 증가, 효율적인 금융시장에 기인한 낮은 거래 비용,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의 자산을 많이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경제 발전은 물론 화폐 가치의 안정, 경제의 안정 역시 경제의 기초체력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튼튼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는 바로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 첩경이다. 규제 완화를 지지부진하게 끌 일이 아니다.
[[문화일보 2008-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