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민심을 두려워하는 국회라야 한다


동문기고 정진영-민심을 두려워하는 국회라야 한다

작성일 2008-08-25

<포럼> 민심을 두려워하는 국회라야 한다

 - 정진영 / 경희대 교수·비교정치학 -
 
어느 선진국에서 국회의원들이 80여일 동안 등원을 거부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것도 국회법을 명백히 어기면서. 국회는 공전되고 헌법상의 기능이 마비된다. 이 경우 이 나라의 국민은 이런 국회와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우할까. 선진국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관행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제18대 국회의 임기는 5월30일부터 시작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총선 이후 새로 임기가 시작되는 국회의 첫 회의는 임기개시 후 7일 이내에 개최돼야 하고, 그 회의 첫날에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3일 이내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게 돼 있다. 이른바 원(院)구성을 10일 이내에 마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 원구성을 80여일이나 못하고 있었으니 제18대 국회가 첫 번째 한 일은 스스로 법을 어긴 것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국회 개원을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대한민국 국회의 관행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회를 여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국회를 여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따라서 국회는 자동적으로 개원돼야 한다. 국회를 열지 않고 임무를 방기하라고 그 많은 특권과 보수와 보좌진을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4년 후에는 자동 개원되도록 국회법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개원 협상 등으로 국회가 공전되면 그 기간에는 당연히 일체의 보수 지급과 지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 잘못된 관행은 더 많이 있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야가 협상을 통해 나누어 가지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표결을 통해 선출하도록 돼 있는 국회법에 따라 과반 의석을 넘는 정당이나 정당연합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는 것이 다수결 원리에 맞다. 그런데 이것을 의석수에 따라 나누어 가지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법사위원장 자리가 특히 그러하다. 법을 제정하는 절차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배분 방식은 다수당의 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소수당에 제공함으로써 책임정치의 원리에도 맞지 않다. 책임을 못 지도록 만들어 놓고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문제 또한 앞으로는 상임위원장을 과반수 정당이 독차지하도록 국회법을 고쳐야 한다.

국회에서의 표결을 소수당이 몸싸움으로 막는 것도 참으로 잘못된 관행이다. 아마 이런 사태를 우리는 조만간 또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소수파가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막아보겠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국회의 오래된, 그러나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인 관행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은 늘어만 간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여야가 정부에 대한 무조건 지지와 반대의 태도로 대립하는 경향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국회의 의석 분포가 국민의 변화하는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국민이 국회의원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고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무서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를 4년이 아니라 2년마다 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어렵게 문을 연 제18대 국회이다.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서 할 일도 참으로 많다. 더 이상 헌법상의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국회가 아니라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국회상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2008-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