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신용철-청와대 기록문서 유출 논란 유감
[독자 칼럼] 청와대 기록문서 유출 논란 유감
- 신용철 (사학60/ 12회, 경희대 명예교수) -
전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문서 유출문제로 전직 대통령과 청와대 간에 볼썽사나운 분쟁이 벌어졌었다. 뒤늦게나마 전임 대통령이 기록물을 반환키로 해 다행이다.
서양의 기독교처럼 전형적인 종교를 갖지 않았던 동양의 유교 문화권에서는 역사가 종교의 권위를 대신할 만큼 중요시되었다. 옛날부터 국가의 정통성이나 문화의 상징으로서 역사를 기술하고 보관 관리해 왔다. 지금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을 쓰는 사관은 몇 대(代) 선조를 심사할 정도로 매우 엄정하게 선임되었으며, 그의 관리 역시 전국의 가장 안전한 곳에 분산 보관하여 마치 신위(神位)처럼 그 훼손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전쟁과 병란을 겪으면서도 잘 보관 관리되어 온, 춘추관 사고를 비롯한 5대 사고(史庫) 등이 바로 그 실례다. 1498년 연산군 때 무오사화의 원인이 바로 사초(史草)에서 비롯했으며, 임진왜란 때 피란 중에도 만난을 무릅쓰고 전주사고의 실록을 내장산에 옮긴 유학자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국왕이라도 역사의 기록을 마음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역사를 존중하고 관리해 왔다. 그런데 전임 대통령이 사저에서 국가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까지 260만 건이나 되는 그 많은 기록 문서를 자신의 사저에 보관하면서 보겠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일이다. 물론 전임 대통령이 그 많은 문서를 통해 '연구'를 하려는 데 대해서는 존경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국가의 기록문서는 극도의 비밀을 요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있을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개인이 사저로 갖고 갈 수 있는 사사로운 물건이 아니다. 아무리 전임 대통령이라 해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복잡한 법률 이론을 따지기에 앞서 원본이나 사본을 불문하고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전통이고 상식인 것이다. 유출 자체가 이미 엄청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기록 문서를 열람하려면 소정의 절차를 밟아 읽으면 되는 것이지, 전임 대통령이나 어떤 특정인이라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집으로 가져간단 말인가?
전임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다섯 분이나 되는 전임 대통령 모두 그렇게 한다면 도대체 우리나라의 청와대 기록문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네 전임 대통령도 그에 대한 의견을 밝힐 만도 하다. 우리 기록문화의 기원이기도 한 중국은 그들의 역사기록물 보관소인 당안관(�案館)의 문서를 지나칠 정도로 대단히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음은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이번에 반환되는 청와대의 기록문서들은 하루빨리 원상 복귀되어야 함은 물론, 혹 손상되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정부 역시 몇 달의 정부 인수기간에 실효성 없는 영어교육 같은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도, 정작 그처럼 중요한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은 커다란 잘못이며 역사인식의 결핍을 보여 준 것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200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