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소통은 마음을 얻는 것이다


동문기고 노동일-소통은 마음을 얻는 것이다

작성일 2008-06-30

[fn시론] 소통은 마음을 얻는 것이다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법대 교수 -

소통! 현 시대의 키워드가 이 한 단어에 압축된 듯하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한동안 국정운영을 마비시킨 일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 부재가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국민은 건강을 염려하는데 대통령은 ‘안 사면 그만, 안 먹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헛다리를 짚은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100일 남짓 만에 청와대 실장과 수석에 이어 총리와 내각이 총사퇴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중대 사태다. 역시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에 이어 참모들마저 국민은 등이 가렵다고 하는데 엉뚱하게 다리를 긁어 댄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대립뿐 아니다. 여당과 야당의 대치,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소통 부재에 원인이 있어 보인다. 국민의 뜻을 내세우는 것은 같지만 상대를 향한 발언을 보면 마치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소통의 막힘으로 고생하고 있는 가운데 소통에 성공한 외국 지도자들의 사례가 들려오고 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우선 돋보인다. 원 총리는 수년간 똑같은 낡은 옷과 신발을 착용한 사실이 밝혀져 중국 인민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인민들 사이에 ‘우리 총리’라는 공감대를 이룬 것이다. 쓰촨성 대지진 당시 원자바오 총리의 활약은 그를 다시 한번 인민의 친구로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노구를 이끌고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재난 현장을 ‘시찰’하는 다른 지도자들의 행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졸지에 고아가 된 어린이들을 얼싸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 맨바닥에 앉아 감자와 옥수수를 인민들과 함께 먹는 모습, 붕괴된 건물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총리가 왔다. 조금만 견디라”고 외치는 모습. 설사 ‘쇼’라 해도 그런 차원의 쇼라면 지도자가 얼마든지 해야 할 쇼가 아닐까 싶다.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버락 오바마의 예도 있다. 오바마 후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기대만큼 우려도 크지만 2008년 미 대선은 오바마가 있어 국외자도 흥미 있게 지켜볼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오바마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가장 큰 힘은 그의 소통 능력이라고 한다.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 분명하게 설득하는 그의 태도에서 대통령이 될 경우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을 잇는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특히 지난 3월에 있었던 ‘필라델피아 연설’은 압권이다. 인종 문제가 이슈화되자 그는 피하지 않고 연설에서 이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인종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우리가 연설 내용에 감동을 받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대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교회 등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강의와 토론, 그리고 설교 전에 읽어 올 교재 등으로 다투어 채택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그처럼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지도자의 소통 능력은 부러운 일이다.

수석진을 완전 교체하는 강수를 둔 청와대가 새로운 직제를 선보였다. 홍보기획관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홍보수석을 부활하고 정치인·언론인을 대폭 기용한 면모는 전체적으로 정무·홍보 기능을 강화했다는 평가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1기 청와대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보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국민소통비서관이라는 직책이다. 국민과 소통이 얼마나 절실하다고 느꼈으면 그 같은 이름의 직책을 신설했을까 이해는 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직설적 표현에 오히려 멋쩍은 웃음이 나온다. 이름이야 그렇다치고 더 큰 우려는 향후 국정운영 지향점에 대한 것이다.

청와대의 홍보기능 강화가 혹시라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홍보부족, 인터넷 여론전에서 밀린 것을 국정난맥의 원인으로 진단한 결과가 아니기를 바란다. 참여정부는 국정홍보처를 두고 모든 부처가 전방위적 홍보 공세를 강화한 바 있다.

그 결과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홍보기능 강화가 결코 국민과 소통에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소통은 홍보의 기술이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진심과 정성이 소통의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알아야 한다.

[[파이넨셜 2008-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