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송병록-일하는 국회를 보고 싶다
<포럼> 일하는 국회를 보고 싶다
- 송병록 / 경희대 행정대학원 교수·정치학 -
오늘로 제18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지 3주가 지난다. 그러나 제18대 국회는 원 구성을 위한 개원 협상마저 시작하지 못한 채 국회 밖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일도 하지 않고 세비를 받는 것이 민망했던지 세비를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을 거론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이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국민의 심정은 여간 착잡하지 않을 것이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여야 모두 코미디 같은 공천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국민이 제18대 국회에 거는 기대는 여느 국회에 못지않았다. 갓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에게 경제 회생을 최상의 목표로 내건 범 보수 세력이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했으니 국민은 지지 정당을 떠나 정말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보고 싶어했고, 그래서 우리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온갖 시급을 요하는 어려운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국회마저 촛불시위에 휩싸여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미 국회 등원을 결정한 자유선진당을 제외하고, 쇠고기 재협상이나 가축전염병 예방법 통과를 전제로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통합민주당을 포함한 야 3당은 모두 이른바 중산층과 서민,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가 표류함으로써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계층이 바로 이들이다. 특히 제1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불난 집에서 담뱃불이나 붙이고자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양이어서 볼썽사납다. 참가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촛불시위가 국민적 지지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해서 통합민주당마저 촛불시위에 참가해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국정 동반자로서 책임 있는 야당의 태도가 아니다. 지금 통합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이 할 일은 불난 집에 불을 끄기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국회에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인사행정을 시작으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과 그 이후의 대처 방식에서 무능과 무대책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대책 없는 정부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제18대 국회가 할 일이 더욱 많아진 것이다. 필자는 재야 시민단체에서 의정감시단장과 정치개혁위원장으로서 오랫 동안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평가해왔다. 그 평가에 의하면 초·재선 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중진과 다선 의원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제18대 국회의 초선의원 비율은 제17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133명으로 44.5%를 차지하며, 재선의원 역시 90명으로 30.1%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오랜 만에 국회에 다시 들어온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국회가 개원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의 본질은 국민의 먹을거리 선택에 대한 국민 주권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매일매일 먹을거리 문제로 불안을 느끼는 주부들에겐 더욱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차적으로 여성 국회의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제18대 국회의 여성의원은 역대 최다인 41명(13.7%)이나 되는데 국회의 조속한 개원을 위해서 여야를 초월하여 여성 의원들도 나서야 할 때다.
현대 현실주의 정치학의 태두나 다름없는 유대계 독일 출신 미국 정치학자인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는 이미 1948년 그의 저서에서 국력의 조건으로 지리·자연자원·공업력·군비·인구와 같은 유형자산과 국민성, 국민의 사기, 외교의 질, 정부의 질과 같은 무형자산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유형자산보다는 무형자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국회는 형편없는 외교와 대책 없는 정책으로 국격(國格)과 국력을 저하시킨 채 좌초돼 있는 이 정부를 하루빨리 견인하기 바란다. 광장의 촛불은 국민에게 맡겨놓고 이제 국회의원들은 제발 국회로 돌아가라.
[[문화일보 2008-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