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도정일-왜 ‘이명박 아웃’을 외칠까
[시론]왜 ‘이명박 아웃’을 외칠까
- 도정일 (영문61/ 13회) / 경희대 명예교수 -
춧불시위 현장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엄중한 메시지 중에는 "미친 소, 미친 정부"라는 것이 있다. 정권이 출범 석달만에 '미친 정부'로 진단된다는 것은 참 심각한 문제다. 이보다 더 깊은 불신의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넌 뭐든 절대 하지 마"라는 외침에 이르면 그 불신의 정서는 노골적인 표현 수위에 도달한다. 대통령더러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마"라면 대통령 그만 두라는 소리다. 이런 깊은 불신은 무엇에 연유하는가? 집권세력은 지금부터라도 그 불신의 뿌리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뿌리에 대한 치열한 자체 분석과 성찰이 없다면,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근원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집권세력이 지금의 위기국면을 풀어나갈 길은 막막하다.
불신의 뿌리가 깊어졌다는 것
시민 저항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집권세력의 대처방식을 보면 그들이 문제의 핵심을 얼마나 잘못 파악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틀린 인식과 대처가 어떻게 사태를 더 악화시켰는지가 드러난다. 교계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은 "소나기는 피하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또 '설거지'론을 다시 꺼내기도 하고 우리가 통상국가이기 때문에 재협상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다만 재협상에 준하는 조치들을 강구하면 된다고도 말했다 한다. 이런 발언은 국민을 더욱 화나게 하기 딱 알맞다.
국민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고 한 달 넘게 요구해 왔는데 대통령은 우이독경으로 협상불가를 말하고, 쌍방 쇠고기 합의문 상의 수입위생조건은 고스란히 그대로 둔채 '재협상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통상국가이기 때문에 재협상을 못한다? 내 돈 주고 쇠고기를 사오면서 내가 원치 않는 고기를 들여와야 한다고?
국민은 반문한다. 오히려 통상국가이기 때문에 당당히 통상조건을 협상하고, 필요하면 재협상하고 또 재협상해야 하지 않는가? 왜 자꾸 '꼼수' 부리고자 하는가? 협상이 원천적으로 부실했다면 그걸 고치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대통령은 왜 국민의 그런 요구를 무시하고 "소나기는 피하면 된다"고 말하는가? 집권당은 어째서 재협상 촉구결의안을 국회에 내지 않는가?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잠시 피하기만 하면 되는 일회성 여름 소나기쯤으로 알고 있는가.
근원적 성찰없인 해결 막막
이런 대목에 이르면 시민들이 왜 "이명박 아웃"을 외치고 "정권퇴진"까지를 꺼내게 되었는지가 분명해진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정권이 아니라는 판단을 굳히기 시작한 것이다. 연단에 오른 여고생이 앳된 목소리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선창하고 시위자들이 연호하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외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사단은 거기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시민적 불신의 뿌리는 훨씬 깊다. 그 뿌리는 집권세력의 중대한 몇 가지 오판, 실수, 착각과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오판은 "이제 민주주의 타령은 그만하자.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착각에 연유한다. 국민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에 표를 주었지만 민주주의는 팽개치고 경제만 챙기면 된다는 데 동의한 것은 아니다. 1906·70년대식 개발독재논리와 속도전의 부활이 그런 착각을 대표한다. 두 번째 오판은 대선 당시 국민이 절대적 지지를 보낸 것은 전임 정권들이 해놓은 일들은 모조리 둘러엎고 완전히 새 판을 짜도 된다는 소리라고 읽어낸 신호 오독이다.
소위 '잃어버린 10년'론은 그런 오독을 대표한다. 셋째, 시장제일주의의 무차별 확대를 시도하는 무모한 실용주의, 사실은 실용주의라 부르기도 민망하게 현실도 모르고 철학도 없는 '시장 낭만주의'의 분별없는 추구다. 네 번째 실수는 몇 개의 불행한 세력동맹과 관계되어 있다. 시민도 진실도 안중에 없는 몇몇 보수 신문들과의 권력동맹, 부유층과의 몰지각한 세력동맹, 세계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모르는 일부 편협한 보수 기독교 세력과의 동맹이 그것이다.
촛불시위는 이런 착각, 오만, 오판이 초래한 국정 난맥과 실정에 대한 경고이며 불신의 표현이다. 이 불신은 결코 쇠고기 문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공공성의 위기, 교육과 환경의 위기를 비롯해서 시민생활의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층위들에서 현 정권이 발생시키고 있는 여러 위기를 시민들은 알고 있다. 불신의 이 깊은 뿌리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권은 임기 내내 소나기를 피해 도망다니는 원두막 정권으로 끝날 수 있다.
[[경향신문 2008-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