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의 과제
<포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의 과제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중국과 국내 일각에서 한중관계가 격하되거나 소원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 대통령은 이번 중국 국빈방문을 통해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한중관계를 지금의 경제사회 분야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정치외교안보 분야까지 포괄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기로 중국과 합의했다.
지금껏 미국, 일본과 해왔던 군사안보 차원의 전략대화를 중국과 러시아로 확대하고, 동북아시아의 한·중·일 3국이 정상회담 및 외무장관회담을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개최하도록 노력하겠다는 합의도 했다. 중국이 요구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중국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깝고 중요한 나라다. 중국의 폭발적 경제 성장은 우리에게 위협이기도 하지만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무역 규모만 보면 중국은 우리에게 미국보다 거의 2배나 중요하다. 우리 기업들의 제1의 투자처이기도 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정치군사 강국인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나라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중국의 위상을 인식하고 이번 방문을 통해 한중관계에 대한 우려를 상당부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 및 일본 방문을 통해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복원했고,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국내의 어지러운 정국을 생각할 때, 국가 지도자는 역시 국내에서 보다 외국에서 업적을 거두기가 쉽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나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는 국빈방문의 화려함과 언어적 수사 뒤에 냉엄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과의 우호협력이 독도와 역사 문제로 종종 좌초하듯, 중국과 우리 사이에도 한반도 통일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더 나아가 막강한 중국의 등장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멕시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애기할 때 ‘미국은 너무 가깝고 신은 너무 멀다’고 하듯, 우리도 지리적으로 너무나 가까운 강대국 중국이 우리의 미래에 드리울 그림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불거진 중국의 외교적 결례에 관한 논란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국가원수 방문을 앞두고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동맹을 역사적 유물이라고 평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신임 주중 한국대사의 신임장 제정을 미룬 일은 한국 정부의 외교 노선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표시하고 한국을 길들이려는 제스처로 이해될 수 있다.
얼마 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때 서울 거리에서 국내 체류 중국인들이 경찰과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도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영향력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롭게 설정되는 한중관계의 모습은 7월에 있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동맹의 강화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핵과 선군정치를 앞세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한국의 외교노선을 중국이 과연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중 간 새로운 관계 설정의 성공 여부와 구체적 내용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북핵 문제 해결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염두에 두고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한중관계 강화로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적당한 수준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자국의 자율성과 협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유능한 전략가라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대미·대중 외교에 모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문화일보 2008-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