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문병준-한·미 FTA, 17대 국회가 마무리하라
<포럼> 한·미 FTA, 17대 국회가 마무리하라
- 문병준 / 경희대 교수·경영학 -
우리가 종래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펼쳐 보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해 6월30일 양국간 서명이라는 큰 산을 넘은 지 1년이 돼 간다. 이제 그 발효를 위해 미 의회의 비준과 우리 국회의 비준동의 및 대통령의 비준이라는 마지막 산을 넘어야만 한다. 무수한 반대와 이견을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야권이 반대하면서 제17대 국회 종료 이틀을 앞둔 오늘까지 비준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다른 할 일도 많은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한·미 FTA를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것인가. 한·미 FTA 체결의 가장 중심적인 추진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한·미 FTA의 국회 비준동의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FTA 체결 유공자들과 가진 모임에서 “우리가 FTA를 체결하려고 하는 것은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 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다수의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에 뜻을 같이했다. 그리고 이러한 한·미 FTA의 목적이 오늘날 새삼스럽게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몇 달 전까지 노 대통령과 함께 정권을 담당했던 통합민주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기화로 한·미 FTA의 비준동의를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 설득력이 약하고 당당하지도 못한 처사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20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비준동의 거부의 이유로 “쇠고기 개방에 대한 재협상 없이는 한·미 FTA 비준동의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꺼내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합의에서 쇠고기 검역주권이 보장되지 못했고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에 대한 통제가 취약했던 점에 대해 많은 국민이 우려하고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일 발표된 한·미 간 쇠고기 검역주권 서한 교환은 실질적으로 이러한 하자를 치유하는 효력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하면 손 대표가 이를 이유로 한·미 FTA의 비준동의를 거부한다는 것은 논리적 설득력이 약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주고받은 서한에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제20조 및 세계무역기구(WTO) 동식물 검역협정에 따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와 SRM에 대한 규정 위반 시 한국이 검역 중단을 취할 권리 등이 명문화돼 있다. 정부는 형식상으로는 서한이지만 그 효력은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합의 이상의 구속력을 갖는다고 언급했다.
더욱이 국가간 이미 체결된 협정을 재협상한다는 것은 외교적 관례상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손 대표의 비준동의 거부 이유는 설득력이 더욱 떨어진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이미 타결된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이른바 그들의 ‘신통상정책’을 반영하기 위한 재협상 주장을 제기한 바가 있다. 이러한 미국 측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재협상 절대불가’라는 원칙으로 맞서지 않았던가.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 비준을 어렵게 하는 요인을 세 가지로 꼽은 바 있다. ‘손해 보는 사람의 반대’와 ‘유연성 없는 낡은 사고’ 및 ‘경험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이는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 모든 영역에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통합민주당 등 야권은 현 시국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국민적 지지가 떨어진 정부·여당을 몰아붙일 호기로만 삼으려 할 게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한·미 FTA의 비준동의에 대국적으로 협력하는 정치력을 보여주기를 촉구한다.
[[문화일보 200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