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공직자 스스로에게 물어라


동문기고 노동일-공직자 스스로에게 물어라

작성일 2008-05-02

[fn시론] 공직자 스스로에게 물어라

- 노동일 / 경희대 법대 교수 -
 
결국 또 한 명의 낙마자가 나오고 말았다. 박미석 수석비서관 본인의 해명처럼 ‘억울한 일’인데 언론에 의해 침소봉대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근본적으로 고위공직자 임명 시스템의 구멍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일 수도 있다.

국외자로서 어느 쪽인지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의 집요한 ‘검증’ 앞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결과는 다를 바 없다. 아마도 본인과 가족에 새겨진 깊은 상처는 세월이 가도 치유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 장관 인선 과정에서 일찌감치 물러난 당사자들도 분노를 달래느라 애를 쓰긴 마찬가지일 것이라 짐작한다.

이른바 민주화 시대 이후 고위공직자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정권 교체 때마다 비슷한 양상으로 되풀이 된다. 사회지도층으로 나름대로 존경받던 이들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문제, 논문표절 의혹 등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쯤되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들은 과거와는 달리 생각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총선에서 당선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구속되거나 사생활이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는 인사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은 본인이 공직자로서 나서려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공직이 유일한 입신출세의 수단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공직은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공직은 여타의 직업과는 다른 독특한 자세를 필요로 한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 규정에서 보듯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공직에 투신해야 하는 것이다. ‘안정직 직업’을 위해 혹은 ‘일신의 영달’이나 ‘가문의 영광’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공직을 좇는 것은 기본적인 자세에서부터 어긋나는 셈이다. “헌신하고 봉사하고 희생할 만한 결심이 돼 있는지 점검하지 않고 입신양명을 위해 청와대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뒤늦게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탐관오리’란 말처럼 관리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던 시절에도 다산 정약용은 공직자의 덕목으로서 민중본위의 봉사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은 “수령의 본무는 민중에 대한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가의 정령을 빠짐없이 두루 알리고 민의의 소재를 상부 관청에 잘 전달하며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민중을 보호해야 하는 데 있다”고 했다. 하물며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임을 대통령이 앞장서 강조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공직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자질과 능력, 전문성 등에서도 자신의 공직 적합성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이는 요즈음 유행인 공직 적합성 시험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하위직부터 공직에 투신한 직업공무원이 아니라 대통령 등 정권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하루 아침에 고위공직에 발탁된 인사들의 경우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해당 분야의 박사학위, 탁월한 연구성과 등은 필요충분 조건이라 할 수 없다.

최근 혁명적인 오사카 지방정부 개혁을 통해 돌풍을 일으킨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부 지사의 말대로 정부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의 덕목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이를 적절히 배분하고 반대론을 돌파해서 국민이 원하는 바를 실현해 낼 수 있는 리더십이다. 수령은 근민(近民)의 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 신망,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선택하여 임명해야 한다는 정약용의 지적에 고위직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주변을 살펴야 한다. 자신의 개인사는 물론 남편·아내·부모·자녀 등 가족들의 삶에도 공직취임과 그 수행에 걸림돌로 작용할만한 사실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위장전입, 농지법 위반, 세금탈루 등 과거 개발시대에 누구나 했던 일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내각과 청와대 인사는 물론 일부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들을 볼 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인물들이 공직을 탐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검증 절차 등 제도보완이 필요하지만 그 많은 공직후보를 샅샅이 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직은 말 그대로 공공에 봉사하는 무거운 자리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아는 개개인이 공직이 자신에게 맡는 자리인지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파이넨셜 2008-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