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이석우-광화문 광장을 위하여
[시사풍향계―이석우] 광화문 광장을 위하여
- 이석우 / 경희대 명예교수·역사학 -
서울은 서울다울 때 서울이다. 서울이 서울다울 수 있는 것은 북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강남땅의 교환가치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부동산의 개념일 때 그렇다는 것이지 문화를 생각하면 북한산의 정기가 넘치는 북촌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이 북촌의 중심에 광화문이 있다. 조선조 한양 천도 이후 나라의 중심이던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상징가로이다.
그동안 수난도 많았다. 일제시대 이 거리는 식민지 정책에 발맞춰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육조거리가 폐쇄되고 종로에 전찻길이 나면서 전통적인 공간배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총독부 건물이 궁궐 안에 들어서니 궁의 정문이던 광화문은 자연스레 밀려났다. 월대와 해태상 등 문의 부속물 역시 거추장스런 장식물로 여겨져 밀려나 여기저기 방치됐다.
광복 이후에도 광화문의 복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국 초기 이승만 정부는 나라를 되찾고 새로운 공화국을 세우는 데 주력하긴 했으나 전통의 계승과 보존에는 소홀했다.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왕정복고를 우려해 애써 외면했다는 시각도 있다.
군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거리와 문화도 급격한 개발 드라이브 정책에 동원되는 수단으로 인식됐다. 광화문은 바짝 밀려나 지어졌다. 그나마 벌목금지라는 스스로의 족쇄를 풀지 못해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왕조시대의 유물인 간판에는 통치자의 한글 글씨가 쓰여졌다. 광화문 앞 공간 역시 자동차 거리로 내주고 말았다. 자동차가 매연을 뿜으며 500년 왕조의 대문 앞을 질주했고 사람들은 으레 그런줄 알고 대문 앞을 무심히 걸었다. 정부 중앙청사가 우뚝 선 한국행정의 1번지, 문화예술의 전당인 세종문화회관, 이순신 장군이 큰 칼을 들고 서 있고 대형 빌딩이 즐비한 광화문 풍경. 그것이 본래 광화문통의 모습으로 알고 너무나 오래 익숙해져 있었다.
이 광화문이 이제 탈바꿈을 한다. 서울시가 지난주 첫삽을 뜬 광화문 일대 광장조성 사업은 일제시대 이후 굳은 살처럼 여겨오던 광화문에 일대 혁신을 꾀하는 시도다. 가운데 가로수를 드러내고 차선을 줄여 가운데를 광장으로 꾸미는 것이다. 중국의 천안문 앞 광장과는 비교하기 힘들어도 국가 상징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공사가 끝나면 내국인과 관광객들이 북악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며 한국의 유구한 전통문화를 체험한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하다.
그러나 광장은 공간만 제공한다고 해서 금방 문화가 살아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칫 광화문 가운데 조성된 넓은 공간이 휑한 섬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교통 위험이 상존하고, 거리에서 광장으로 진입하는 편의가 고려되지 않을 때 그러하다.
따라서 광장이라는 공간을 만드는 일에서 나아가 도시의 숨결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장과 도시가 유기성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선 광장과 골목길의 연계가 필요하다. 즉 골목길의 에너지가 광장으로 분출하고, 광장의 기운은 다시 골목길로 수렴되는 순환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도시는 시민과 광장의 친근성이 각별하다. 시청과 교회로 이어지는 거리에 어김없이 조성되어 있는 광장. 한 도시의 중심이고 상징이다. 거기서 시민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즐긴다. 한 도시의 문화가 잉태되고 성장하고 계승된다.
새로 조성되는 광화문광장 역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사진이나 찍는 장소에서 벗어나야 한다. 계절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고,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내야 한다. 서울시민이 어울리고 만나며 거기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광화문광장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향기를 피워올려야 비로소 광장의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0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