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남북연락사무소 제안에 거는 기대
<포럼> 남북연락사무소 제안에 거는 기대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중 매우 주목할 만한 대북 관련 메시지들을 보냈다. 그 중 하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북 식량 지원을 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또 하나, 이 대통령은 서울과 평양에 남북한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과감한 제안을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대북 제안이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국제관계에서 주권국가들이 국교 정상화를 하기 직전의 단계에 해당하는 관계를 설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북한이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서로를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례에 따라 존중할 것을 합의하는 셈이다. 이 경우 서울과 평양에 북한과 한국의 국기가 게양되고 두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상주하게 된다. 정부 당국자 간의 대화가 상시화하고 남북한 간의 위기관리가 쉬워질 수 있다. 요컨대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안을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남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이에 관해 합의했고, 한국 정부는 이후의 남북대화에서도 이러한 제안을 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이 비록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이를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내부에 이러한 방향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조만간 정부 차원의 공식 제안이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북한이 이러한 제안에 당장 호의적으로 응해 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언론 매체들을 통해 이 대통령의 방미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50일간 북한이 보여 온 적대적 태도를 바꾸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한 간의 평화와 협력 진전을 위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기대한다.
첫째, 북한은 한국의 정치 현실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선 이후 민노당 내부의 종북주의 논란이 시사하듯, 북한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한국 정치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4·9 총선에서 남북관계가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현실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한국의 친북 성향 정권들이 퍼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감싸고 지원하는 와중에 핵실험을 했다. 이는 친북 성향의 정치 세력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한국의 정치 지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한반도 주변의 국제관계 현실과 한국의 위상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통한다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은 한국이 미국을 버릴 수 있고 북한에 매달리는 자세를 취할 때에나 성공할 수 있다. 북한이 무시한다고 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낮아지지 않는다. 북한은 이제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셋째, 북한 당국은 북한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을 직시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붕괴 위험에 직면한 북한 체제의 현실을 개선하는 길은 개혁과 개방밖에 없음을 북한 당국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북한 체제에 대한 정치적 위험을 우려해 이 길을 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특수성을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이해해주기를 요구한다. 이제 변화는 북한이 선택할 차례다.
남북한 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이 대통령의 제안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면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북한에 대한 한국민과 국제 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일순간에 바꿀 수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자신의 결단력과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2008-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