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임성호-政黨시스템 정상화 그렇게 어렵나
[동아광장/임성호]政黨시스템 정상화 그렇게 어렵나
- 임성호 / 경희대 교수·정치학 -
몇 년에 한 번 선거철마다 겪는 열병이라 하기엔 너무 심했다. 병의 증상이 하도 이상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한시적, 부분적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잘못돼 터진 중병으로 보인다. 근본적 체질 변화를 하지 못하면 시간이 간다고 낫는 병 같지 않다.
18대 총선 기간에 나타난 여러 증상은 심각하다 못해 황당하다. 정당마다 예외가 없었다. 원내 제1, 제2당은 ‘개혁공천’이라는 하향식 개발독재의 뉘앙스 풍기는 기치하에 어디가 현역을 더 많이 자르는지 경쟁을 벌였다. 선거를 당 결집의 호기가 아니라 오히려 계파 권력투쟁과 분열의 적기로 사용했다. ‘전략공천’이라는 자의성 짙은 수사 아래 지역 거주민도 아닌 사람들을 낯선 선거구에 공천해 유권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낙천 의원들은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과 분노의 진풍경을 연출하며 탈당 러시를 이루었다.
특정인을 당 이름에 넣는,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초유의 일도 태연히 벌어졌다. 정강도 없이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 ‘정당’은 아예 선거 후 해체를 전제로 급조되었다. ‘선진’이란 이름을 단 정당은 이름과 달리 시대착오적인 지역주의 정서에 노골적으로 호소했다. 새 한국을 ‘창조’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건 정당은 1인 조직으로 전락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은 정당과 이익단체의 차이가 무엇인지 헛갈리게 한다.
당내 이견 용납 않는 시각 바꿔야
낙천자의 탈당을 예상한 주요 정당이 공천을 워낙 뒤로 미룬 탓에 후보 간 정책대결은 실종되었다. 그 공백을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 헐뜯기, 근거 없는 뜬소문, 믿거나 말거나 식의 거품공약이 대신 채웠다. 국민으로서는 참 짜증나고 암담한 선거였다. 정당, 정치인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그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총체적으로 깊어졌다. 50%도 안 된 투표율은 그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과연 선거 후라고 새 국회가 입법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새 국회의 입법결정에 영이 설지 의심스럽다.
선거 때 드러난 온갖 증상 이면에는 그릇된 정당관(觀)이 자리 잡고 있다. 정당은 내부로 균질한 상하 질서를 갖추고 외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퍼져 있다. 당내 결정은 다양한 생각의 상향식 조정보단 지도부 소수의 판단으로 위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견은 당내에서 포용되지 않으므로 차라리 당을 달리 하는 것이 낫고, 다른 당이나 유권자와의 관계에서는 단합된 통일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많은 정치인이 은연중 이런 생각을 따른다. 일방적 하향식 공천, 당내 계파 세 불리기, 공천 불복과 탈당, 정당인지 클럽인지 애매한 조직들의 급조, 상대 당에 대한 막무가내 공격 등은 이런 정당관의 결과다.
정당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선거 후 상황도 뻔하다. 당내 이견이 안에서 흡수되지 못해 바깥으로 터져나가며 분당, 탈당, 합당, 재분당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당 대 당의 집단적 대립상황 속에서 중간적 합의는 요원할 것이다. 정당구도 자체가 수시로 변하고 정당대결이 경직되면서 국정은 교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 심해지고 국회가 사회갈등의 조정·해결 기제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자칫 국회무용론까지 퍼지며 행정부가 국정을 독점하고 국회와 정치권은 주변부에서 비판만 하는 불평분자로 전락하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하다.
부닥치며 진화하는 게 정상
이제 정상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정상은 정당에 대한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당내 이견과 갈등은 당연하다. 그것의 민주적 포용이 중요하다. 외적 단합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당 구성원의 자유와 독립성을 억압할 정도여선 곤란하다. 때론 당론 비판과 교차투표가 있어야 정당 간 조정·합의가 용이해진다. 결국 정당은 균질한 재료로 기계적 인위적으로 만드는 공작품이 아니고 다양하고 상충되는 생각을 지닌 수많은 사람이 모여 부닥치며 자연스레 형성되고 진화하는 유기체다. 이런 재인식이야말로 한국정치의 정상화를 위한 처방약일 것이다.
[[동아일보 2008-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