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금산분리 완화가 금융 경쟁력 높인다


동문기고 안재욱-금산분리 완화가 금융 경쟁력 높인다

작성일 2008-04-11

<포럼> 금산분리 완화가 금융 경쟁력 높인다
 
- 안재욱 (경제75/ 28회) / 경희대 교수·경제학, 美 오하이오주립대 방문교수 -

최근 금융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금산분리 완화와 금융지주회사 설립 활성화 등 금융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보고했다. 금융위 업무보고에 따르면 현행 4%로 제한하고 있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를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궁극적으로 보유한도가 폐지되고,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규제가 완화돼 은행을 제외한 증권사나 보험회사도 제조업체 등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된다.

사모펀드(PEF)와 연기금에 대한 은행지분 보유 완화와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긴 겨울의 끝남을 알리는 봄비만큼이나 반갑다. 오랫 동안 이러한 규제들이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 막아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이라는 원칙 아닌 원칙에 매달려 은행의 소유를 제한하고 금융지주회사의 영역을 엄격하게 규제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규제들을 완화해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합리적인 경제원리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재벌에게 은행을 소유하도록 해야 하느냐며 비논리적으로 반응해왔다.

경제원칙이라고 하는 것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어떠한 경우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금산분리는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인위적인 규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사를 보면 은행은 상인의 모험사업으로 시작했다. 은행업의 기원은 귀금속 제조업과 약속어음 및 환어음을 동시에 취급하는 영국의 금 세공업이다. 현대적 은행의 기원은 무역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주 업무였던 머천트뱅크다. 메디치은행, 로칠드, 하우스 오브 모건 등이 이렇게 출발했고, 체이스맨해튼과 웰스파고 등은 기업의 금융지원부에서 출발했다. 은행업과 산업을 분리하는 정부의 규제도 없었고 시장에 의한 분리도 없었다.

오늘날 인가은행에 적용되는 금산분리의 기원은 1694년 영란은행의 설립이다. 영란은행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심각한 재정 문제에 봉착한 영국 정부에 아주 저금리로 자금을 융자해주는 조건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그 대가로 은행권 발행의 독점권을 갖게 됐다. 그렇게 특혜를 받은 영란은행의 영향력을 우려해서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상업 업무를 하지 못하게 했다. 영란은행의 상품 취급 금지를 했던 것은 상업자본과 결합하여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될 때 생기는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은행 간에 특별한 관계가 계속 유지될 경우 그로 인해 생길 폐해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 후 많은 국가들이 영란은행을 따라서 인가은행에 대해 금융과 산업을 분리했고, 이것이 원칙 아닌 원칙이 됐다.

은행 소유 제한을 완화하면 은행을 재벌이 소유하게 돼 재벌의 사금고로 사용되게 된다는 주장이 많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법의 주식 소유자에 대한 대출한도 규정을 적용하면 사금고 문제는 해결할 수가 있다. 은행 소유 제한을 제거하여 은행에 주인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관치금융 아래서 주인 없는 은행들이 힘 있는 정치인과 정부 관료의 ‘사금고’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금산분리 규제는 기본적으로 진입 규제다. 경쟁력 있는 잠재적 기업이나 개인의 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진입 규제는 경쟁을 가로막는 규제다. 그런데 경쟁은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 이런 점에서 금산분리 규제는 진작에 완화됐어야 했다.

이번 규제 완화를 통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꼭 실현되기를 바란다. 금융 규제 완화는 지금까지 말로만 무성했지 실제로 실현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번 규제 완화 방침이 또다시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위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200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