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송병록-‘작은 정부’는 실천 의지의 문제다
<포럼>‘작은 정부’는 실천 의지의 문제다
- 송병록 / 경희대 행정대학원 교수 -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기획재정부의 불필요한 태스크 포스(TF=Task Force)팀 운영계획을 강하게 질책한 이후 각 부처마다 유휴인력으로 운영하려던 TF팀을 해체하기로 했다. 이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정부 운용 기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각 부처가 관료주의와 집단이기주의의 타성에 젖은 결과이기도 하다. 현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작은 정부와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했지만, 결국 여야 협상 과정에서 정부조직이 노무현 정부의 18부4처에서 15부2처로 축소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정작 정부 부처는 축소됐는데 중앙 부처의 공무원 감축 계획을 유야무야 하려다 보니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06년 8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기타 국책 연구기관의 공동 연구 보고서는 선진국 진입 요건으로 과감한 감세정책, 규제 완화, 개방화 그리고 ‘작은 정부’를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2008년 2월 행정자치부가 국회 행자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노 정부 출범 후 중앙 행정기관의 공무원은 6만6000명 이상이 늘어 2007년 11월 현재 95만2000여명에 이르렀다. 사실상 노 정부는 실업자 구제 차원에서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업에 대한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의 인기는 계속해서 상한가인데, 결혼정보 업체에 따르면 공무원은 이미 최고의 신랑감이다. 2006년 통계청 조사를 보더라도 15~24세 청소년의 33.5%가 공무원을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고 있다. 놀랍게도 고등학교 연령대인 15~18세 사이에서도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35.9%로 아주 높다.
또한 2007년 7월 통계청 발표를 보면 15세부터 29세 취업준비생 중 절반이 넘는 57.8%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급 공무원시험에 석사 학위 소지자뿐만 아니라 대기업 근무자들까지 가세하고 있어서 이미 대학가와 학원가는 공시(공무원 시험)족, 공시낭인으로 넘쳐나기 시작한 지 오래다. 물론 그들만을 탓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한번 늘어난 조직과 인원은 여간 해서는 줄이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선 더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공무원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 저하는 물론 온갖 불합리한 규제와 낭비, 부정·부패가 여기서 기인한다. 현재 정부의 역량과 혁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하위권 수준이며, 2006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밝힌 우리나라의 공직사회 부패지수는 여전히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과 퇴출(구조조정)이 없는 조직 및 사회는 활력을 잃게 마련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도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법이 정한 공무원의 신분을 함부로 박탈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일자리 차원을 넘어 한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로 사회적 살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공무원들의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치밀한 프로그램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공무원 감축이 무능한 공무원이나 고위직 공무원보다는 힘없는 계약직이나 별정직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여러 가지 개혁과제 중 공기업 개혁과 공무원 조직의 개혁은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이는 집권 초 신속·공정·과감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게 되며,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관료들의 논리에 포섭되고 만다는 것을 1988년에 출범했던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정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식공무원(Smart Bureaucracy)’으로 무장된 작고 효율적인 정부다.
[[문화일보 200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