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이-공천제도 정비가 정치개혁 첫걸음이다


동문기고 윤성이-공천제도 정비가 정치개혁 첫걸음이다

작성일 2008-04-04
[열린세상] 공천제도 정비가 정치개혁 첫걸음이다
 
- 윤성이 /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한나라당 공천 정국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강재섭 대표에게 불공정 공천을 책임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박연대 의원을 지원하지도 않겠지만 한나라당을 위한 지원 유세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강 대표는 계파 공천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 50여명은 ‘형님 공천’을 철회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공천을 반납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총선을 불과 보름쯤 앞둔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한나라당의 공천 파국을 지켜보면 사자성어 두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순진하고 소박한 바람이 덧없음을 말하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백년을 기다려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 깨끗한 정치, 국민을 위하는 정치에 대한 소망이 그야말로 백년하청이 아닐까 싶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천과정을 지켜보면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말도 절로 떠오른다. 공천싸움 속에 그들이 입만 열면 내세우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염치는 없어진 지 오래이다. 그러고도 자신들을 믿고 밀어달라고 외친다. 참으로 뻔뻔스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태도이다.

민주정치의 기본 운영원리는 절차의 예측가능성 그리고 결과의 불확실성에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예측가능한 공천 절차를 갖추지 못해 파행을 겪었다.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을 했다고 하나 그 방법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한나라당의 경우 전문성, 도덕성, 의정활동 역량, 당선 가능성, 국가·지역 및 당에 대한 기여도 등이 심사기준이었다 하나,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천자 중에는 철새 정치인도 있고, 낙제점에 가까운 의정활동 평가를 받은 의원도 있고, 지난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도 있다. 이렇다 보니 낙천자들이 순순히 승복하지 못하고 ‘친박연대’라는 희한한 정파가 생겨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민주당이 이번 공천에서 그나마 한나라당보다 후한 점수를 얻은 것은 순전히 박재승 위원장의 활약 덕분이다. 그러나 절차의 예측가능성이란 기준에서 볼 때 개인의 소신과 뚝심에 기대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다음 총선에서 또 다른 박재승을 찾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이번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당 지도부와 후보들이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같은 파행은 사실 공천 때마다 빚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경선 중에 규칙을 바꾸고 새로 정하면서 일부 후보들의 탈당 사태까지 불러왔다. 현재와 같은 공천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파행은 되풀이될 것이다. 낙천자들까지도 순순히 승복할 수 있는 공천이 되기 위해서는 공천제도 재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공천제도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 보자. 지금과 같은 공천위원회 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 17대 총선에서 일부 시행된 예비경선 제도를 다시 도입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공천위원회 방식을 채택한다면 심사기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세세한 부분까지 명시해야 한다. 예비경선 제도를 취한다면 경선시기, 유권자 구성방법, 표 계산 방식 등을 자세히 정해야 할 것이다.

공천제도에는 공천시기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후보를 결정하면서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능력과 공약을 보고 투표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태도이다. 정책선거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선거 두달 이전에 후보자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개혁에 대한 유권자의 소망이 백년하청이 될 수는 없다. 정치개혁의 첫걸음을 공천제도 정비에서부터 시작하길 강력히 요구한다.

[[서울신문 2008-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