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사이언스·네이처의 부실 논문  


동문기고 김상준-사이언스·네이처의 부실 논문  

작성일 2008-03-24

[과학칼럼]사이언스·네이처의 부실 논문  
 
- 김상준 / 경희대 교수·우주과학과 -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낸 국내 과학자의 논문에서 중대한 ‘진실성 결함’이 발견되었고,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린다 버크 박사가 학술지 ‘네이처’에 낸 자신의 논문에서 ‘중대 결함’이 발견되어 스스로 취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 과학계의 신뢰도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속 게재 방침에 검증 허점-

황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 이후 과학자뿐 아니라 국민들도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 기억으론 한국 과학자들이 이들 학술지가 권위 있다고 인정하게 된 것은 10년 남짓밖에 안 된다. 또한 선진국 과학자들이 이들 학술지를 가장 권위가 있다고 인정하는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왜 한국 과학자들은 이들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데 목을 매고, 심지어는 조작까지 할까.

그 대답은 사이언스와 네이처의 편집 방침에 있다. 즉 이들 학술지는 논문 제출 후 발행을 최대한 신속하게 함으로써 과학계의 발견과 신기술을 다른 학술지보다 먼저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필자의 공동연구자들도 경쟁하는 과학자들이 있으면 그들보다 먼저 발표하기 위해 이들 학술지에 게재하자고 제안했던 기억이 난다. 서둘러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논문들이 다른 학술지에 실리는 것에 비해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 자연히 이들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서 실수가 자주 나오고, 드물지만 비양심적인 과학자들의 조작된 논문들도 나오는 것이다. 다른 유명 학술지에도 실수가 나타나지만 사이언스나 네이처보다 논문 검증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실수 빈도가 적다. 그다지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학술지에는 질이 떨어지는 논문이 게재되는 경우도 있다.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또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 대중도 읽을 수 있도록 저자들에게 전문용어가 아닌 쉬운 용어로 쓰도록 권장한다. 그러면 내용이 왜곡될 여지가 있다. 때로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저자의 원래 제목을 무시하고 임의로 신문 기사 제목처럼 자극적으로 바꾸기까지 한다. 필자가 또 한 가지 한심스럽게 여기는 것은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 엉터리 논문에 대한 반박 논문은 정식 논문이 아니라 신문의 정정보도처럼 조그맣게 줄여 게재한다는 점이다. 자기 교정에 힘쓰지 않는 학술지는 훌륭한 학술지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연구업적 양적 평가 바꿔야-

이들 학술지에 의해 많은 발견과 신기술들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논문들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기도 했다. 따라서 이 학술지들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이것이 아마도 그들이 은근히 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대중도 사 보게 되고, 또 이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횟수가 다른 학술지의 논문보다 많아지는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국내 교수나 연구소 연구원에 대한 연구업적 평가에 발행된 논문 수 이외에 인용횟수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 과학자들이 이들 학술지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이로니컬한 것은 중국, 대만 등도 이러한 정량적 평가를 시작하였고, 이런 평가에 거의 초연하던 서구 과학자들조차 경제규모가 커진 동북아 국가들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듯 보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의 경쟁력 강화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인용횟수에 의한 정량적 평가에는 두 학술지의 경우에서 보듯 허점이 있다.

이제는 정량적 평가 외에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과학자 평가방법을 도입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즉 학술 논문의 질, 과학자가 몸담고 있는 학문분야에서의 영향력, 해당분야 국내외 과학자들의 평가 등 정성적 평가도 비중 있게 감안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견과 신기술은 사이언스와 네이처가 아니라 그 분야 중요 학술지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2008-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