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손혁상-대외원조는 ‘미끼’가 아니다
[시론] 대외원조는 ‘미끼’가 아니다
- 손혁상 / 경희대·NGO대학원 교수 -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이름을 정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용정부’로 불리는 것 외에 달리 이름이 없을 듯하다. 모든 정책이 실용노선을 좇고 있다. 대외정책도 ‘실용외교’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실용노선으로의 전환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현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외교 노선은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李정부 자원확보 수단 검토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외교 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글로벌 외교와 함께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한 기여외교, 자원외교를 제시했다. 정부 부처도 ODA를 지렛대삼아 외교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외교부는 자원 확보를 위해 ODA를 자원부국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미국과 ODA를 공동 추진하겠다는 정책도 검토했던 모양이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 의혹은 가시지 않았으며 정부 출범 초기 ODA를 한·미동맹 강화나 자원외교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논의되었다는 자체로 불신을 초래했다.
한국은 원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지 얼마 안 된, 원조 역사가 짧은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ODA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 첫째는 대외 원조 철학과 적정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로는 파편화되어 있는 원조 시행 기구와 원조 효과성 평가체제 미비 등 원조정책 전반에 대한 철저한 내부 성찰도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현 대외원조정책에 대한 근본적 검토 없이 ODA를 섣부르게 국익을 위한 단기적 도구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이런 조급증은 오히려 국익을 해칠 수 있다. 또한 자원외교에 원조정책을 활용한다는 정책은 효과성 측면에서도 의문이 든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날 수도 있지만, 아프리카 자원 부국에 막대한 분량의 원조를 투입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나 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발상이 국제사회의 규범과 ODA의 근본 취지를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다.
국익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정치, 경제적 이익의 관점을 넘어 국익에 대한 주요 가치는 국민이 내 조국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점을 포함하고 있다. 즉 국민이 갖게 되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국익의 큰 축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국가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캐나다가 좋은 예이다. 캐나다는 미국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면서 종속적 원조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 크지 않은 원조 규모를 가지고도 에이즈 퇴치, 평화 등 글로벌 아젠다를 해결하는 국제사회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캐나다 국민들은 국가에 자부심을 느끼며 지구촌 평화와 인권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실용외교’가 능사 아니다
이제 한국도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빈곤 국가에서 세계 12위의 경제 규모로 성장한 경험을 바탕삼아, 인권과 환경, 빈곤퇴치 등 글로벌 아젠다를 함께 풀어나가는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외원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대외원조 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서둘러 대통령이 이끄는 실용외교로 앞서서 달려가는 이명박 정부는 ODA를 통한 기여외교를 경제적 실용외교의 수단으로 사용한 일본의 실패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2008-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