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환-기술 유출, 국가 기초체력 해친다


동문기고 박익환-기술 유출, 국가 기초체력 해친다

작성일 2008-03-21

<포럼> 기술 유출, 국가 기초체력 해친다
 
- 박익환 / 경희대 교수·법학 -
 
얼마 전 조선기술의 해외 유출이 있은 데 이어 최근 자동차 기술과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기술마저 유출됐다 한다. 이런 기술들은 국가경제에서 매우 중요하다. PDP 기술 유출의 경우는 손실액이 무려 1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제조업에서 수출로 이 정도 돈을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다들 안다. 요즈음 반도체와 관련된 나노디램공정 기술에 관해서는 기술 유출인지 기술 수출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기술 유출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몰래 빼내서 파는 것이고, 기술 수출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파는 것이다.

기업체의 산업 기술들은 대부분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불법 유출에 대해서는 엄격한 민·형사적 책임이 가해진다.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산업기술은 그 기술을 보유한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이 크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시행되는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 핵심 기술 등 주요 산업 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면 불법 유출 행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규제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되고 있는 산업기술 유출은 법률만으로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이익이 눈앞에 있을 때, 법망을 피해서 요리조리 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법령만으로 일일이 막기는 어렵다. 법이 만들어져도 그 법망을 빠져나가는 온갖 변칙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사례에서 보더라도 내부자가 사전에 공모한다면 얼마든지 기밀 유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관련자들이 산업기술을 무단 유출하지 않도록 사전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사후적인 징벌이 철저해야 한다. 업계가 자체적으로 기술 유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 기술의 핵심 인력들이 부당한 처우를 당하거나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철저한 입법 대응책도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 국민적으로 산업기술과 지적재산권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는 홍보활동이 있어야 한다.

사회 분위기상으로도 산업기술의 불법 유출 행위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조성돼야 한다. 개별 기업에서 하기 힘든 유출 방지를 위해 정부는 기술 보호에 필요한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은 나라 전체가 먹고 살 기본 체력을 해치는 일이다.

글로벌 경제 시대이기 때문에 기술의 종류에 따라서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기술 유출에 대한 판단이 애매할 수 있다. 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하는지 외국에서 사용하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서 비용을 극소화하려는 의도에서 해외에 투자하는 경우도 ‘유출’인지 ‘수출’인지 판단하기 힘들 수 있다. 중요한 산업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과 인수하거나 합병되는 경우도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애매한 부분이 있더라도, 기술이 밖으로 나감에 따라서 조직의 개인만 이익을 보는 것인지 궁극적으로 나라 전체가 이익을 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핵심적인 산업기술력은 바로 한 나라의 총체적인 경쟁력과 직결된다. 나라 간의 경쟁력 차이도 기술력 차이에서 나온다. 예컨대 지금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기술력 차이가 있다. 하지만 주요 산업기술이 유출되면 그 차이는 빠른 속도로 좁아지고 그 순위까지도 역전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산업기술의 유출은 개별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그만큼 엄격한 법적 잣대가 필요하고, 철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문화일보 200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