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harmstoday.com/news/49305 相生의 삶
안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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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이자 사회적 동물이기도 한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일로 바쁘게 하루를 살면서도 사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도 못한다. 내일 일을 알 수가 없고 단 몇 시간, 몇 분 후에 일도 모른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많은 사람들은 점을 보면서까지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점쟁이라 해도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정확히 맞힐 수는 없다. 어찌 점 뿐이겠는가. 최고의 명의라 할지라도 내일 환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감히 말할 수도 없고 자신할 수도 없다. 성서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인간은 매우 제한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어진 신의 피조물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들은 부족한 자원,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싸움을 벌이면서 종족을 유지해왔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 유일하게 본능을 뛰어 넘어 빼앗을 줄도, 나눌 줄도 아는 존재다. 사실 인간 이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결코 주어진 본능을 벗어나 남의 것을 빼앗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사나운 짐승이라 할지라도 배가 부를 때는 먹이를 찾으러 다니지 않는다. 비축해 놓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르다.
말로는 ‘서로 사랑하자’고 밥 먹듯 쉽게 내뱉으면서도 대립과 갈등 속에서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심지어는 생명을 빼앗기까지 한다. 먹고 사는 문제와는 무관하게 같은 인종끼리 물고 뜯고 죽이는 싸움을 끊임없이 벌이는 존재는 불행하게도 이 지구상에서는 인간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사태의 변화 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때로는 기뻐하고, 더러는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잠식하면서 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인간에게는 감성과 함께 따뜻함을 나누는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자신은 배고프고 허기질 지라도 남을 위해 자기 것을 내주고 심지어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까지도 버릴 줄 아는 존재 또한 인간인 것 같다.
누군가 “사는 것이 숨바꼭질 하는 것 같고 그리고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하면서 도 잡을 수 없는 게 인생인가 보다”던 푸념이 어렴풋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삶을 매일 같이 반복하면서도 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순의 나이가 되면서 사람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는 것 같다. 여기서의 ‘넓어진다’는 말은 포용력이 넓어진다는 말도 된다. 사람 본연의 모습은 아름답고 존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고 사랑에 대한 필요성과 필연성을 인정하고 이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미움의 감정이 생기고 편견으로 시각을 가리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최근 예비 국무위원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씁쓸해짐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 역시 편견의 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너나 할 것 없이 수십억 원의 재산과 부동산을 갖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병역이나 세금 문제가 거론되는 지 납득이 안 간다.
부자라고 해서 정치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편견이길 바란다. 형식적인 청문회이지만 과거나 현재나 하나 같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다. 물론 자본주의 생존경쟁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경쟁은 필요하겠지만 이웃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우리다. 자연의 삶속에서 이웃을 섬기며 버릴 것은 버리고 진정한 이웃 사랑을 나눌 때만이 비로소 좋은 세상,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일상적인 삶 가운데 인간이 따라 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자신의 삶의 세계를 질서와 조화가 있고 따뜻한 정감이 오가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잃어버린 아름다운 마음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