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이-미래를 준비하는 정부 기대한다


동문기고 윤성이-미래를 준비하는 정부 기대한다

작성일 2008-02-29

[열린세상]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 기대한다
 
- 윤성이 / 경희대 정치외교학 교수 -

정부조직 개편안이 가까스로 타결되었다. 새 정부가 장관도 없이 출범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피하게 되었지만 이명박 정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여전히 좋지 않다. 국제 유가가 치솟고 국내물가 오름세도 심상치 않다. 올 경제가 외환위기 후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도 있다.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에 대한 지지 여론도 벌써 식어가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당선인과 인수위에 대한 지지도가 과거 정부 출범시기와 비교해 떨어진다. 그 이유는 대입제도 개편, 몰입식 영어교육 도입, 그리고 정부조직법 논란 등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벌써 개혁 피로증을 느끼기 때문이라 한다. 새 정부가 아직 출범하지도 않았고 ‘일하는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피로감을 느끼게 하니 걱정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장관 내정자들과의 워크숍에서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쪼개어 사용하고 분·초 단위로 계획을 세워 일하라고 독려했다. 어느 장관이 잘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말까지 했다 하니 그 분위기는 가히 짐작이 간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누누이 다짐한 당선인이기에 걱정도 많고 조바심도 날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차근차근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하루빨리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한다. 김대중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서두르다 훗날 카드대란을 불러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 50년 역사의 오점을 모두 도려내겠다는 성급함 때문에 사회갈등만 부추겼다. 이명박 정부도 경제성장 7% 공약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임기 내에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욕심에 마음이 바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 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당장의 성과에서 한 발 물러서 다음 정부 혹은 그 다음 정부에서 7%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자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발생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하고, 문제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설픈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가져올 것이고 결국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 새 정부는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보이려 하기보다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5년 안에 보여주는 미봉책을 찾기보다는 10년 혹은 20년 후라도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모든 정부가 새로운 입시제도를 들고 나왔지만 국민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나날이 가중되고 출신대학은 평생을 꼬리표로 따라다니고 있다. 기필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요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 비정규직은 제대로 된 취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청년실업자의 수는 나날이 늘어간다. 그렇다고 향후 이 문제들을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을 준비해 놓은 것도 아니고, 시행착오의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모두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섣부른 의욕만 앞섰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이다.

입시제도, 부동산시장,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살리기, 모두가 한 정부의 임기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만만한 문제들이 아니다. 한 쪽을 막아 놓으면 생각지도 않게 다른 쪽이 터지는 일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근본부터 해결하려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새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의 범주를 5년이 아니라 10년 혹은 20년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매번 실패를 거듭해온 5년 정부의 주기를 끊을 수 있다. 다음 주 출범하는 이명박정부는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서울신문 2008-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