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김상준-시리우스를 움직인 백색왜성
[과학칼럼]시리우스를 움직인 백색왜성
- 김상준 / 경희대 교수우주과학 -
우리나라 겨울의 경우 맑은 날이 많기 때문에 거의 매일 밤하늘에서 별들을 볼 수 있어 즐겁다. 봄이 오면 춥지 않아 좋은데 잦은 비와 황사 때문에 맑은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아주 적다.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얼어붙은 밤공기를 뚫고 별들이 빛나고 있다. 오리온 별자리는 남쪽 하늘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오리온 별자리 좌하 방면으로 올라오던 제일 밝은 항성 시리우스가 이제 남쪽 하늘에 제법 떠올랐다.
1만배 큰 별 끌어당기는 중력
시리우스는 현대 천문학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별이다. 시리우스는 매우 밝고 비교적 가까운 별이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19세기 초부터 망원경을 사용하여 많은 관측을 해 왔다. 그런데 베셀이라는 천문학자는 1844년 이 별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관측했다. 그리고 강력한 중력으로 끄는 무엇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 후 1862년 시리우스를 도는 아주 희미한 별이 발견되었다. 이 별은 밝기가 시리우스의 1만분의 1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 정도 밝기면 지구만한 크기다. 이렇게 조그만 별이 태양에 버금가는 중력을 가지고 시리우스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은 별에서 각설탕 크기의 물체는 약 1의 무게를 가진다. 무게가 엄청나니 이 별 내의 압력도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이 별은 그 압력을 견딜 수 있을까.
천문학자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 별은 백색으로 빛나고 있는 작은 별이라 백색왜성으로 명명되었다. 이후 50여년이 지나고 1920년쯤에야 물리학자들에 의한 양자역학의 탄생으로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26년 영국의 파울러 박사는 백색왜성과 같이 원자와 원자가 거의 붙어 있는 상태에서도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축퇴’ 압력에 의해 함몰되지 않고 견딘다며 백색왜성의 작지만 엄청난 무게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백색왜성의 엄청난 무게도 인간의 상상력을 막지는 못하였다. 파울러 박사의 인도계 제자인 찬드라 세카르 박사는 영국으로 유학가는 기나긴 바다 여행 동안 태양무게의 약 1.5배 이상 되는 백색왜성이 ‘축퇴’ 압력조차 견디지 못해 또 다시 함몰되어 원자 속의 원자핵과 전자가 부딪치는 상태인 중성자성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아이디어는 가히 혁명적이었고, 그 다음 함몰단계인 블랙홀이 되는 과정을 예견케 하는 쾌거였다.
블랙홀 생성과정 토대 제공
별의 무게가 태양의 약 3배 이상 되면 그때는 중성자성 내의 모든 중성자가 자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끝없이 함몰되어 결국 부피가 0인 블랙홀이 되어 버린다. 당시에는 이러한 과정을 과학자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 천문학계의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던 에딩턴 박사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나이어린 천문학자의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조롱하거나 심하게 몰아붙였다. 이것은 다분히 유색인종에 대한 영국 과학자의 인종차별에 기인한 것이었다.
젊은 찬드라 세카르 박사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천문학을 포기하려고까지 하였다. 결국 시간이 약이라고 점차 다른 과학자들이 중성자성 가능성에 대해 납득하게 되자 에딩턴 박사도 항복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 둘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 정착한 찬드라 세카르 박사는 제자를 기르는 데도 열정과 인내심이 대단하였다. 당시 중국 유학생이던 양전닝(楊振寧), 리정다오(李政道)를 위하여 160㎞ 떨어진 곳까지 운전하고 가서 지도를 하곤 하였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은 결실을 맺어 양·리 박사는 57년 패리티의 보전법칙에 위배되는 현상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찬드라 세카르 박사와 스승인 파울러 박사도 중성자성과 블랙홀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늦게나마 8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학문적 아버지, 아들, 손자 모두 노벨상을 받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블랙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요즘 남쪽 하늘에서 초저녁부터 무심히 빛나고 있는 시리우스를 보며 현대 천문학 여명기에 있었던 천문학자들의 별에 대한 탐구 노력과 그들도 인간이기에 겪었던 심적 갈등을 회상해 본다.
[[경향신문 2008-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