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하용-'규제 천국' 경제자유구역
[시론] '규제 천국' 경제자유구역
- 정하용 /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외국인투자자들이 새 정부 개방·경제 정책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표명한 새 정부의 외자유치를 위한 첫걸음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외자유치 전담조직인 국제경쟁력강화특위가 신설되었고 공동위원장에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회장이 임명되었다. 엘든 위원장은 지난 4일 입국하면서 첫 일성으로 "한국 시장도 두바이만큼 개방돼야 한다"며 개방과 규제완화 공론화를 예고했다.
현재 국내 외자유치의 상황은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다. 공교롭게도 엘든이 입국한 날 산업자원부의 발표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산자부는 이날 2007년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전년보다 6.5% 감소한 105억1000만 달러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올해까지 3년째 FDI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최근 원화 강세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명색이 동북아시아 물류허브·금융허브를 지향하는 나라의 FDI 규모로는 매우 부끄러운 숫자다.
현 정부의 외자유치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는 지난 2003년 외자유치를 목적으로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만권 세 곳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외자유치의 첨병에 서 있었다는 3대 경제자유구역의 외자유치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이들 3개 경제자유구역의 2003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의 FDI는 12억 달러 규모이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이 유치한 FDI 총액의 약 2.5% 수준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경제자유구역들이 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참여정부는 지난해 12월 경기·충남, 대구·경북, 전북 등 3개 지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총 6개 경제자유구역이 서로 경쟁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겠다는 것이다. 의도는 좋다. 하지만 기존 경제자유구역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들 세 곳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경제자유구역의 현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근 인수위 국제경쟁력강화특위에 업무현황보고를 한 각 지역 경제자유구역청장의 호소는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그들의 호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복잡한 규제철폐다. 규제철폐 없이는 외국인 투자는 절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기업활동의 자유는 없고 규제라는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만 있는 경제자유구역이라는 것이 외국자본으로부터 참여정부가 받아놓은 냉엄한 성적표이다.
경제자유구역법은 특별법이 아닌 일반법이기 때문에 각종 상위법의 규제를 받고 있고, 경제자유구역 중 송도국제도시를 포함해 가장 앞서 있다고 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규제로 국내 대기업의 투자가 가로막혀 있다. 균형발전 논리가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투자를 고려할 때 '국내 대기업이 이미 투자하고 있는 곳인가'라는 점은 중요한 투자 판단요인 중 하나다. 인수위가 검토하고 있는 해외자본과 국내자본이 함께 '생산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두바이, 상하이나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특구는 특구로 경쟁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은 말 그대로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제공하는 것이 성공비결이다.
경제자유구역은 의지만 있다면 새 정부의 규제철폐와 이에 따른 외자유치의 실험장으로 충분한 조건을 이미 갖고 있다. 한 지역 경제자유구역청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자식을 낳은 뒤 고아원에 내다버렸다"고 냉소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들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든든한 부모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200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