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노동일-특별사면과 법치주의
[fn시론] 특별사면과 법치주의
- 노동일 (법학 77/ 29회) / 경희대 법대 교수 -
지난해 마지막 날 또 다시 특별사면이 있었다. 이번 사면은 말 그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취임 초기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고 했던 현 정부에서 5년 동안 8번이나 사면권을 행사한 것 자체는 별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체념할 수 있는 일이다.
일부 사면대상자 명단을 비밀에 부친 것은 조금 특별해 보인다. 사면·복권 대상자는 전과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일부 명단만 공개했다는 설명은 군색해 보인다. 그 가운데 특정 기업인이 2005년 5월 석가탄신일에 이어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도 포함돼 노무현 정권에서만 두 차례나 사면을 받게 됐다는 특별한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법무부가 ‘이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설명을 덧붙일 정도로 정권 담당자들과 특별한 사연이 있었으려니 짐작해 볼 따름이다. 더 특별한 사실은 사법부의 재판과정을 한편의 코미디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번 특별사면자 명단에는 임동원·신건 두 명의 전직 국정원장도 포함됐다. 이들은 형이 확정된 지 불과 4일 만에 사면이 이루어졌다. 그것까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두 전직 국정원장은 ‘불법 감청’을 지시·묵인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20일 항소심에서 1심에서와 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것은 상고마감 시간을 몇 시간 앞둔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4시30분.
하지만 신건 전 원장은 상고장 제출 2시간 후인 오후 6시30분쯤, 임동원 전 원장은 오후 8시께 상고를 취하했다. 결국 27일 밤 12시 이들에 대한 혐의 사실은 ‘유죄’로 확정됐고 형량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확정되었다. 이들이 사면대상자 명단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4일 뒤인 31일이었다.
깊은 내막이야 알 길이 없다. 특별사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당사자들이 미리 알았는지 아니면 사전에 조율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럴 바에야 애초부터 수사는 왜 하고 재판은 왜 한 것인지.
당사자들은 지금도 수사와 재판에 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기에 대법원에 상고해 최고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전직 정보기관장까지 구속하면서 한편의 떠들썩한 활극으로 불법도청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 수사와 재판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특별사면은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에 의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언했던 것도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고려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면권 남용에 대한 비판 의견을 일축해 온 현 정권이 임기 말 떳떳지 못한 방법까지 동원한 것은 여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노 대통령의 말처럼 가뜩이나 초라한 뒷모습에 소금을 뿌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새롭게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법치주의 확립을 강조한 바 있다. 떼법, 정서법이란 말이 없어지도록 하겠다는 말도 있었다. 차기 정부가 국정목표로 세운 선진국 진입은 이 당선인의 말처럼 법치주의 확립 없이는 요원한 일이다.
법을 무시한 채 막무가내식으로 떼를 쓰는 노동자들이나 갖가지 방법으로 법의 틈새를 노리는 기업인이나 법치주의 확립에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에 대해 준엄한 법의 확립을 강조하는 법치주의의 지름길은 권력자가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부터 엄격히 제한하는 모범을 보일 것을 권한다. 측근과 자신들의 패거리에 대해 일방적으로 온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에게 법치주의 확립을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권력은 조심스레 행사할 때 설득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설득력 없는 특별사면권 행사에 대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말로 어깃장을 놓는 것은 냉소를 자초하는 일이다. 사면권은 과거 왕권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는 만큼 제한적 행사가 바람직하다. 헌법상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라 해도 이는 국민에 의해 위임된 범위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뿐이다. 다음 정부는 말과 행동이 달라서 국민의 외면을 받는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파이넌셜뉴스 200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