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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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해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가운 현실을 탓하고 원망하며 의욕마저 잃어버릴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이 나라를 경제 회생국으로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경제 대통령을 선택했고 취임하기 전부터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갖가지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암담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비록 200만명의 실직자와 경제빈곤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나눔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리어카를 끌고 가다 교통사고로 숨진 엄석남 할아버지의 경우 생전에 모은 전 재산 254만 4000원을 동사무소에 기부했다.
엄 할아버지는 폐지·고물 수집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자신이 죽으면 모은 돈은 어렵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위해 서달라고 자녀들에게 유언을 했다고 한다.
또, 9년간 무려 30억원을 기부해 온 '기부천사' 가수 김장훈 씨의 경우 그간의 선행이 인정되어 최근 아산상인 사회봉사상을 받고 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원 전액을 또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김장훈 씨는 남는 돈으로 기부하지 않았다. 가계부에 기부할 금액을 미리 써놓고 그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돈에 맞춰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매년 천사(10.04km) 걷기대회와 천사(10.04km) 달리기 등을 실시하는 강원도의 작은 도시 '원주'에서 원주시민들이 매월 1계좌 1004원의 후원금을 모아 힘든 이웃을 돕는 '원주시민 서로돕기 천사운동'이 갈수록 폭발적 호응으로 알찬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 2004년 8월부터 이 운동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연인원 14만 5000여명이 20억 19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았고, 이 기금으로 1만 4895명에게 12억 5000여만원을 지원, 시민 4명 중 1명이 '아름다운 천사'가 되었다.
이 운동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기부금이 소액이지만(1004원) 많은 시민이 동참한다는 점이다. 저금통을 깬 고사리 손부터 주부들의 바자회, 알뜰시장 수익금,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금에 이르기까지 후원금마다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훈훈함이 느껴지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후손들의 먹고 살거리를 만들기 위해 현재 생활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장 소멸 보상금 150억원을 기꺼이 내놓은 통큰 대도섬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마을 개펄에서 굴, 바지락, 낙지, 새조개를 캐어 먹고사는 어촌 사람들이다.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며 돈을 나눠 갖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후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관광휴양지 개발계획에 동참하기로 하고 가구당 2억 6000여만원의 어업권 소멸 보상금을 포기한 것이다.
이들의 일상의 삶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두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흘러가는 삶이란 어쩌면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새삼스럽게 죽음이란 것을 의식하기는 싫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늙어가고 있고 한편으로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무덤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은 하나의 순환이며, 자연의 이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죽음은 단지 변화에 불과할 뿐이다.
겨울이 여름 뒤에 오듯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언제나 똑같은 낮과 밤이 교차되지만 새로운 날로 이어진다. 한번 지나간 오늘 같은 날이 두 번 다시 오지는 않지만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오늘'을 살며 불투명한 내일을 기다린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다. 그런 내가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반드시 했어야 했던 일, 하지는 말았어야 할 일, 그리고 미처 못다한 말들,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하며 후회하는 마음이 될 것이다.
이처럼 후회를 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내면의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되었든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다 보면 욕심과 욕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도 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이 욕망에 대한 '다스림의 법칙'이다. 부단히 반복되는 훈련과 의지로 욕망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욕망과 욕심은 버리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해도 유혹에 빠질 수 있는 환경에 접하게 되면 그 욕망과 욕심은 용수철처럼 치밀고 올라오게 된다.
그래서 소유욕에 대하 갈등의 골도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독일 작가 '토마스람게'가 지은 '행복한 기부'는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삶이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이 책은 읽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사례를 열거하는 대신 나눔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민들이 타인을 위해 대가를 치루는 것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볼 때 '이기적 목적'도 만족시켜 줄 수 있다며 '합리적 이기주의'나 '상호적 이타주의'를 강조한다.
그래서 부유한 '현명한 이기주의자'들이 빈곤이 결국 자신들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 기부행위에 세금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가난이 결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 가난한 것과 가난하게 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하게 사는 것은 돈이나 욕망보다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 명예, 좋은 것 탐하지 않고 홀씨로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민들레 씨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똑같이 주어진 하루를 살고 있다. 그런 하루를 지내면서 내 생활 속에서 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어떤 삶을 살며, 또 매일매일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어떤 삶이 보람된 삶으로 사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엄 할아버지, 가수 김장훈, 그리고 원주시민과 대도섬 사람 같은 사람들이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눔의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해 질 수 있다" 마틴 루터킹의 말이다.
[시인.수필가.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