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미국 지성계 거목과의 만남


동문기고 이택광-미국 지성계 거목과의 만남

작성일 2008-01-14
[책@세상. 깊이읽기]미국 지성계 거목과의 만남

- 이택광 / 경희대교수·영문학 -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영국에서 학위 논문을 한창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함께 어울리던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예루살렘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한 수전 손택을 두고 말들이 오갔다. 그 상을 받는 게 그동안 손택이 고수해온 비타협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요지였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파 아리엘 샤론이었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반테러전이라는 명목으로 무력을 통해 해결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손택의 수상 수락이 샤론에 대한 지지로 비치는 걸 이스라엘 평화운동가들과 몇몇 미국의 지식인들은 우려했다.

그러나 손택은 수상 연설에서 당시 벌어지고 있던 팔레스타인 거주민에 대한 무력 사용을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힘으로써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집단 처벌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는 ‘연대 책임’이라는 개념이 군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손택이 발언하자 식장에 있던 일부는 환호했고, 일부는 퇴장해버렸다. 손택은 평생 지켜온 양심을 고수했던 것이다.

현대 미국 지성의 상징으로 꼽히는 손택은 수전 로젠블랫이라는 이름으로 뉴욕에 살던 유대계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다섯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7년 뒤 어머니가 네이던 손택과 재혼함으로써 손택이라는 성을 갖게 되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서 그런지 손택은 조숙했다. 장래에 ‘파르티잔 리뷰’에 글을 기고하는 유명 작가가 되고자 했던 어린 소녀는, 교과서 밑에 만화책을 숨겨 놓고 보던 또래들과 달리, 수업시간에 몰래 칸트의 철학책을 읽었다. 개인사도 극적이었는데, 17살에 필립 리프를 만나 결혼한 게 대표적인 예이다.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 하나를 낳고 1958년에 부부는 이혼했다.

결혼이 손택에게 불행의 씨앗이었던 건 아니다. 남편 덕분에 손택은 미국 지식인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입장권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뉴욕에 살면서 ‘파르티잔 리뷰’에 글을 기고하면 5000명의 독자가 읽어주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후 손택은 인디라 간디의 패션을 쏙 빼닮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여성 지식인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마침내 그는 애리조나에서 선생님 몰래 칸트를 교과서 밑에 숨겨 놓고 읽던 그때 그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개성 있게 일생을 살다간 손택의 유고집이 ‘문학은 자유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말년에 손택이 쓴 에세이와 연설문, 그리고 대담을 수록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문 ‘말의 양심’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 지성계의 ‘다크 레이디’로 불렸던 손택의 면모를 이 책은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서 반갑다.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손택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이건 그가 대중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자신을 대중 지식인, 다시 말해서 참여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투했지만, 결국 이 때문에 그의 글 대부분은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스러져갈 운명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유고집의 영문제목이 ‘동시에(at the same time)’인 건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이 책의 맨 뒤에는 ‘나딘 고디머 특강’의 일부로 발표된 동명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이 글은 손택 특유의 모순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 재미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지는 ‘세계화’의 표준에 반대해서 소설의 서사를 옹호하는 건 그렇다 쳐도, 번역이 문학의 영속성을 방해한다는 주장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사실 문학사 자체가 번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번역과 문학제도의 관계는 밀접하다는 게 상식이다. 번역이 있었기에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에서 제인 오스틴이 읽힐 수 있는 것이고 영문학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하여’라는 글에서도 손택은 ‘아름다움’을 ‘흥미로움’으로 대체하는 풍토를 비판하고 있는데, 실제로 자신은 바르트에 대한 글에서 “그가 쓴 모든 건 흥미롭다”고 말한 전력이 있다. 물론 이런 모순적 진술이 드러난다고 해서 이 유고집이 쓸모없는 건 아니다. 모든 글은 모순적이다. 심지어 손택 같은 심미주의자의 글조차도 말이다.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문학을 종교로 삼은 한 ‘사제’의 견결성이 묻어나는 고백록으로 이 책을 읽는 것도 손택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독서법일 것이다.

[[경향신문 200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