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北의 성실신고가 核해결 관건이다
<포럼> 北의 성실신고가 核해결 관건이다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이 또다시 꼬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북경협 추진과 대내적 경제건설만 언급했을 뿐 핵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지난 연말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북한이 성실하게 신고하지 않는 한 2005년의 9·19공동선언과 2007년 2·13합의에 기초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폐기해야 할 핵 프로그램과 핵물질에 대한 신고가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성실한 의무 이행을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이 당선인은 1일 TV와의 신년대담에서 핵 신고 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조금 늦어지더라도 성실한 신고가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미국 의회는 북한과 시리아의 핵 커넥션 의혹을 문제 삼아 북핵 관련 예산의 지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물론 북핵 문제가 금방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신고의무 불이행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북핵 문제의 본질이 바로 핵 불투명성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북한의 전략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러한 전략을 유지하는 한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1990년대 초 제1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이유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고 제2차 핵 위기가 시작된 것도 결국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과 그 해소를 거부한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등 약속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며 신고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고, 미국은 북한이 핵 신고 의무를 먼저 이행해야 한다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핵 불투명성은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핵이 대미 협상의 지렛대이고 체제 보전의 안전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6자회담은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북한 핵의 완전한 신고와 폐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의 과거 핵 개발 전력이 모두 공개되고, 현재 가지고 있는 핵물질이나 핵무기가 모두 폐기되며, 미래 핵을 위한 시설이 모두 불능화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 핵의 1차적 위협 아래 살아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목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현실적으로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북핵에 대한 신고의 완전성이나 성실성을 평가할 객관적 기준이 없고, 전쟁을 제외하면 북핵 폐기를 강제할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이란 결국 적절한 수준에서의 정치적 타협에 그칠 수밖에 없다. 과거 제네바 합의도, 9·19공동선언도, 2·13합의도 본질적으로는 모두 이러한 성격의 타협책이었다. 북한 핵 개발의 모호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면서 추가적인 개발을 막고 알려진 것을 폐기하는 선에서 합의를 했던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 제기되고 있는 이슈는 세 가지다. 첫째, 지금까지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과 사용처를 밝히는 일이다. 둘째, 핵기술이나 물질을 다른 나라로 확산했는지 여부다. 셋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의 존재 여부다. 세 이슈 모두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플루토늄의 양은 곧 북한이 제조한 핵무기의 수와 직결돼 있다. 따라서 북한이 밝히기가 매우 난처하다. 핵확산과 UEP의 존재는 북한이 강력히 부정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면 지금껏 거짓말을 해온 것이라고 자백하는 셈이 되고, 미국에서도 역풍이 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인정을 하지 않으면 미국이 성실 신고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면 핵에 관한 모호성 전략을 버리고 성실 신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긴밀히 협력하여 북한이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만, 아직은 압박정책으로 급선회할 때가 아니다.
[[문화일보 2007-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