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국-열 받는다고 이 갈지 마세요


동문기고 박영국-열 받는다고 이 갈지 마세요

작성일 2007-12-21

[박영국교수의 LOVE TOOTH] 열 받는다고 이 갈지 마세요

- 박영국 (치의72/ 28회) / 경희대치대 교수·교정과 -
 
‘이를 갈다’. 원한을 갚기 위해 복수를 다짐할 때 흔히 표현하는 말이다. ‘이 악물기’ 역시 마찬가지 뜻으로 쓰인다.

 스트레스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요즘 이를 악물거나 이를 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를 악물면 치아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치아의 마모가 빨라지고, 이를 지지하고 있는 치조골(잇몸뼈)이 약해진다. 염증이 아니더라도 이가 쉽게 부서지는 치주증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치아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 이뿌리가 움푹 패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뿌리에 골이 생긴 사람들은 잘못된 칫솔질보다 이를 악무는 습관이 있는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가장 흔한 질환은 턱관절 장애다. 턱이 항상 긴장돼 있어 턱을 움직이는 관절이 탈골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쁜 습관이 두통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턱을 움직일 때는 머리 옆쪽(관자놀이)의 측두근을 사용한다. 이 측두근이 일을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루 15분 정도가 고작으로 나머지 시간엔 다른 골격근(뼈에 붙은 근육)처럼 휴식을 취해야 한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을 하면 이를 악물면서 측두근이 긴장한다. 얼굴 근육이 감정을 표현하는 일차 기관이기 때문이다. 근육은 생리적 한계를 넘는 강한 수축을 반복하면 빈혈 상태에 빠진다. 근육에 분포된 혈관이 압박을 받아 혈액이 통하지 않는다. 그 결과 측두근을 비롯해 목·어깨 근육도 함께 수축하면서 혈액순환에 장애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뇌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중단되고, 이어 두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를 근육긴장성 두통이라고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많다. 주로 지속적인 두통, 머리 전체 또는 한쪽으로만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근육 허혈로 인한 통증은 인체 스스로 극복하는 자연 치유의 한계를 넘어선다. 따라서 진통제 복용이나 마사지, 뜨거운 찜질로는 일시적으로 좋아질 뿐 근본적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따라서 머리가 묵직하게 두통이 자주 오는 사람은 진통제를 복용하기 전에 치과에서 근육기능과 교합검사, 통증유발점검사 혹은 심리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입 안에 교합안정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치아를 악무는 것을 방지해 측두근을 불필요한 긴장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원리다. 이와 함께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이 장치는 주로 잠을 잘 때 장착한다. 이를 악무는 행동은 무의식 또는 수면 중에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200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