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정진영-日 위안부 범죄, 盧정부 北인권 외면
<포럼> 日 위안부 범죄, 盧정부 北인권 외면
- 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일본이 또 한 번 국제적인 창피를 당했다.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캐나다 하원이 29일 규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네덜란드에 이어 세 번째다. 주변국 여성들을 군대의 성노예로 끌고 간 군국주의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비난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짓밟은 죄가, 그리고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지 못하는 일본의 한계가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나게 해준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국제적 기여를 해오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맹주 역할을 하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과거사 문제라는 멍에를 떨쳐버리지 않고는 이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가 현재를 속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스스로 그 멍에를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에 대한 규탄의 대상은 과거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진실을 부정하는 현재의 일본이 도마 위에 올라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우선 일본에 큰 손해임에 틀림없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 싶은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가 국제적으로 존경 받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태도는 주변국들에, 그리고 전 세계에 대해서도 마이너스다.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통해 지역 차원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려는 지역 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현재의 일본은 큰 걸림돌이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비정상적인 일본은 국제협력과 세계 평화에 대한 짐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라들이 자국을 규탄하는 데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범죄다. 그리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를 자부하는 나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일본이 왜 과거의 잘못을 떨쳐버리지 못하는지 알고 있다.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의 뿌리가 거기에 있고, 아직도 과거에 대한 미화가 다수의 일본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천황제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이러한 일본을 이웃에 두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딱하고 난처한 일이다. 일본과 손잡고 동아시아의 협력과 번영을 끌고 가고 싶지만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있는 일본과는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과 북미가 하나로 뭉치는데, 아시아는 분열되어 세계 무대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 때문은 아니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일본을 보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태도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며칠 전 노 정부는 북한 당국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유엔의 결의안 채택에 또 기권했다. 이유는 뻔하다. 인권결의안에 찬성하여 북한 당국을 비난하는 것이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여 남북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짓밟고 있는 북한 당국의 반인륜적 행위를 덮어두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행위가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떠한 멍에가 돼 돌아올까. 일본의 오늘이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문화일보 200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