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벼락의 소리, 클린턴의 소리


동문기고 도정일-벼락의 소리, 클린턴의 소리

작성일 2007-12-05

[도정일칼럼]벼락의 소리, 클린턴의 소리
 
- 도정일 (영문61/ 13회) /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고대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에는 창조신 프라자파티가 지상의 인간들에게 준 세 마디 가르침이 소개되어 있다. 창조신은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하늘의 언어로 말한다. 하늘의 언어는 ‘벼락’이다. 한국인은 벼락 치는 소리를 ‘딱딱딱’으로 표현하지만 고대 힌두어가 받아 쓴 벼락의 소리는 ‘다다다’이다. 창조신 프라자파티는 인간들을 향해 언제나 ‘다다다’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다다다’는 무슨 뜻인가? 우파니샤드의 절묘한 해석학에 따르면 그 ‘다다다’는 각각 다타, 다미아타, 다야디암을 의미하는 축약어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 세 마디는 “주어라, 너 자신을 다스리라, 자비로워라”이다.

-‘주는 일’ 선택한 전직 대통령-

이 우파니샤드 이야기는 내가 자주 인용하는 ‘단골 메뉴’ 같은 것의 하나인데 최근에 이걸 다시 머리에 떠올리게 된 것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에 낸 ‘주기(Giving)’라는 제목의 책 덕분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퇴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본인들에게도 문제이고 남들에게도 관심사다. 정치권력의 정상에 있던 사람이 물러선 이후의 행보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디에 새로 발을 딛게 되는가는 본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함의가 큰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클린턴의 경우는 아직 원기 팔팔하고, 어쩌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유명하고 강력한 배우자를 두고 있다. 아내가 대통령이 되면 클린턴은 전임 대통령이면서 대통령의 남편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럴 경우 그는 백악관 이스트 윙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설거지나 할 것인가?

클린턴이 선택한 길은 ‘주는 일’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 더 따스한 곳, 사람 살기에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사회 자원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주는 일을 해보자, 이게 클린턴의 선택이다. 정치는 언제나 ‘챙기는’(getting) 일에 바빴다고 클린턴은 술회한다. 표 챙기고, 후원금 챙기고, 지지자 챙기기 바쁜 것이 정치인이다. 그런데 자기는 이제부터 ‘주는’ 일에도 바빠지고 싶다고 클린턴은 말한다. 그의 책 ‘주기’는 그가 이런 구상으로 퇴임 이후 해온 일들, 앞으로 할 일들, 도와주고 싶은 일들, 그리고 도움주기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꿔내는 일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클린턴은 말한다. 그 힘은 ‘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 시간, 아이디어는 도움의 세 가지 형태다. “우리 모두는 위대한 일을 해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모든 이의 정신을 들어올리고 심금을 울리고, 시민의 행동과 봉사가 세계를 바꾸는 강력한 변화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

새 일거리를 찾는 전임 대통령들이 곧잘 내놓는 고결하면서도 어딘가 좀 그렇고 그런 소리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클린턴의 소리가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벼락의 소리를 재확인하고 있다는 것이 반갑다. 클린턴 생각으로는 지금 이 세계에는 미국인은 물론 지구촌 모든 이들이 서로 도와 해결해가야 할 다섯 가지 위기 상황이 있다. 테러리즘, 기후변화, 경제불평등, 보건의료, 에너지다. 인간 세계의 위기들은 벼락이 노상 말해온 “주어라, 탐욕을 다스려라, 세상의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자비로워라”가 지금도, 아니 지금에 더욱 더,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경향신문 2007-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