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WHO 한의학 표준화사업과 한자체


동문기고 최승훈-WHO 한의학 표준화사업과 한자체

작성일 2007-11-16

[독자 칼럼] WHO 한의학 표준화사업과 한자체
표준 용어 3543개 선정 정체로 출판
한의학 보편화·세계화 초석 마련
국제한자회의에 영향… 관심 기울여야

- 최승훈 (한의75/ 28회) / WHO 서태평양지역 전통의학 자문관 -

며칠 전 북경에서 열린 ‘한자 통일’에 관한 제8회 국제한자회의에서 한·중·일·대만의 4개국 학자들이 5000~6000 자의 상용한자 표준자를 만들기로 합의한 사실을 놓고 관련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한 달 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는 세계보건기구가 제정한 전통의학 국제표준용어(WHO-IST)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리고 그 열흘 뒤 북경에서도 WHO-IST 출판기념회가 열려 그 내용이 인민일보의 국제판 등 여러 일간지에 보도됐다. 심지어 북경의 한인 주간 소식지에까지 그 내용이 상세히 인용 보도될 정도로 중국에선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달 말엔 호주 멜버른에서, 다음달 중순엔 동경에서 같은 출판기념회가 열릴 예정이다.

WHO-IST는 지난 3년에 걸쳐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주류인 한의학의 표준 용어를 한·중·일 세 나라가 중심이 되어 상용하는 기본 용어 3543개를 표준으로 선정하고, 그 표준 용어에 대해 가장 적절한 영어 번역과 함께 영문으로 된 정의와 해설을 망라한 기념비적 성과물이다. 객관성이 부족한 한의학을 표준화함으로써 보편화와 세계화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도구를 마련한 것이다. 표준 용어는 각종 표준화의 첫 단계로 한의학 분야의 모든 표준은 이 표준 용어를 근간으로 가능해진다. 이 사업을 위해 우리 정부도 2005년부터 WHO에 재정적 지원을 해왔다.

지난주 이탈리아에서 국제질병사인분류(ICD)를 관장하고 있는 WHOFIC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선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에서 제안한 한의학의 국제질병분류(ICTM)가 원칙적으로 WHO 질병 분류의 하나로 채택될 것임을 천명했다. 앞으로 ICTM이 부분적인 수정 보완을 거쳐 WHO 질병 분류의 일원이 되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제 한의학 진단명이 국제적으로 통일됨으로써 각국 간의 원활한 정보 교환이 이뤄지고, 한방 진료에 대한 국제 통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즉, 한의학도 세계 의료의 일익을 담당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WHO-IST가 제정 출판됨으로써 맺어진 첫 번째 열매이기도 하다.

WHO-IST는 코드번호, 영문, 한자 및 영문 정의의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한자는 중국 간체자가 아니라 정체자로 되어 있다. 출판되자마자 중국측이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으나 한의학이라는 학문적인 역사성과 특수성 그리고 다수의 국가가 정체자를 선호한다는 현실적 이유를 들었으며, WHO-IST의 중국어판은 간체자로 써도 좋다고 허락했다.

이번 국제한자회의의 추이와 관련, 향후 정기적으로 개정될 WHO-IST에서 사용될 한자의 자형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각국 사이의 정치 외교적인 노력과 학문적인 조화 협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조선일보 200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