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허동현-돌아온 ‘치욕의 역사’… 과거를 기억하라
[오피니언] 돌아온 ‘치욕의 역사’… 과거를 기억하라
어재연 장수기… 건청궁… 주미공사관 한반도 미래전략 성찰 계기로 삼아야
- 허동현 / 경희대 교수·한국사 -
신미양요(1871) 때 미군에 빼앗긴 강화도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장수기(將帥旗)가 136년 만에 돌아왔고, 한 나라의 황후를 시해한 추악한 범죄현장을 없애려 1909년 일본이 허문 경복궁의 건청궁이 옛 모습 그대로 다시 세워졌다. 1910년 국망(國亡)을 한 달 앞두고 일본이 단돈 5달러에 빼앗아 10달러에 미국인에게 팔아 넘긴 워싱턴의 주미공사관도 정부가 나서서 사들인다 한다.
이런 소식을 접하니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경구가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가 앞서 살다 간 이들의 삶을 거울 삼아 오늘의 삶을 가다듬듯이, 사람처럼 태어나고 죽는 국가도 그 앞길을 비출 등대가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열강의 이해가 충돌하는 국제정치의 한복판에 놓인 우리의 생존전략은 균세(均勢)와 자강일 수밖에 없다. 한 세기 전 쇄국 양이 정책을 펼쳐 무력으로 제국주의 열강에 맞섰던 대원군과 남의 힘에 기대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술책만으로 왕조의 생명을 이으려 했던 고종은 쓰라린 실패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 앞에 다시 다가선 장수기와 건청궁, 그리고 주미공사관은 국망의 슬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메멘토 모리이자 치욕의 과거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날마다 맛을 보아야 할 쓰디쓴 쓸개와 누워 자야만 할 섶나무 더미이다.
“다른 어떤 국민도 능가하는 감투정신으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진지를 지키며 싸우다 죽었다”는 미국 측 기록이 웅변하듯이, 어재연 장군과 휘하 장병들은 적군의 존경을 받을 만큼 용맹히 싸웠다. 따라서 그의 장수기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가 다시 작동하는 오늘 우리의 자존과 자주의식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3명이 전사하고 10명이 부상당한 미군 측 피해와 430명이 전사하고 20명이 포로로 잡힌 우리의 전황을 돌아볼 때, “서양인의 배가 내뿜는 포연이 천하를 뒤덮어도 동방의 해와 달은 영원히 빛나리라”며 ‘승리’를 자축한 대원군의 호언장담은 빛을 잃는다. 중국이 1860년부터 서양의 무기와 기술을 받아들이는 양무운동을 전개하고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을 일으켜 부국강병에 매진하고 있던 것과 비교할 때, 그의 쇄국 양이책은 명백한 시대착오이다. 엄밀히 말해 장수기는 오늘의 우리에게는 위정자의 잘못된 국제정세 파악과 대외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자아내는지를 명증하는 역사의 경고로 되새겨야 할 증표이다.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친정에 나선 고종이 그 상징으로 세운 건청궁은 1887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등이 밤을 밝힌 문명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청일전쟁 이후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던 일본의 흑심을 친러 정책을 통해 막으려 했던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청궁은 명성황후와 고종을 근대화의 주체이자 침략에 맞선 저항의 구심점으로 높이 평가하는 이들의 눈에는 민족 자존과 자주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기억의 장소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청궁에서 빚어진 국모 시해의 비극에 주목할 때, 견실한 자강이 결여된 외교적 책략만으로는 다시 돌아온 열강 각축의 시대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움을 잊지 않도록 일깨우는 성찰의 역사공간이 복원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갑신정변 실패 이후 조선을 반식민지 상태로 몰아넣은 청국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1891년 고종이 자신의 사적 자금인 내탕금을 털어 2만 5000달러의 거금을 주고 사들인 주미공사관은 고종을 높이는 이들에게는 국왕의 주권 수호 의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물로 보일 것이요, 용미(用美)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는 자주·실용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역사적 건축물로 다가설 것이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자력 없이 외세에만 기대 살아남으려 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잘 말해준다.
되풀이되는 것이 역사인가? 약육강식 논리가 관철되는 신자유주의 세상을 맞아 다시 돌아본 우리의 현재는 한 세기 전 상황을 무심히 볼 수 없게 한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국력과 국제적 위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친미와 반미’, ‘민족과 탈민족’으로 나뉜 우리 안의 이분법은 한 세기 전 ‘개화와 수구’, ‘친일과 친중’의 분열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 일각에 강고히 자리잡고 있는 자폐적 민족주의의 병(病)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세계화 경쟁 대열의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경구가 새삼 다가오는 오늘 우리의 내실을 다져 주고 앞길을 비추어 주는 전망과 전략을 제시해 줄 리더십에 목이 타들어 간다.
[[[조선일보 2007-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