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언-방송만능주의 유감(遺憾)


동문기고 김동언-방송만능주의 유감(遺憾)

작성일 2007-10-17

방송만능주의 유감(遺憾)

- 김동언 /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
 
 지난 주말, 화창한 가을날을 느긋하고 특별하게 즐기고 싶어 모처럼 경복궁을 찾았다. 날이 좋아서인지 유치원생, 초등생 등의 단체관람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입구부터 붐비기 시작한다. 그래도 좋았다, 거기까지는.
 근정문을 들어서서 근정전 마당으로 내려서려는 순간, 청년 하나가 나서서 가로막는다. 옆으로 돌아가라는 거였다. 이유를 묻자 그제야 무슨 촬영에 필요한 리허설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순간 당혹감이 들었다. 표를 살 때부터 입장 제지를 당하던 그 순간까지 행사에 대한 안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입장객들은 '방송촬영'을 위한 거라니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고분고분 줄을 지어 옆 회랑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어느 방송사에서 뭘 한단 말이요? 사전에 아무런 안내도 없이." 부아를 터뜨리니 기획사에서 제작 중이고 어느 방송사에다 팔지는 아직 모른단다. 실랑이가 오가는 와중에 다른 행사 진행요원 하나가 다가와 뒤늦은 수습을 서두른다.
 "이렇게 협조가 되질 않아 사극이 되겠어요?"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좋은 드라마를 제작하려면 충분한 연습이 필요한 줄은 알겠다. 그렇다면 일반 관람객들의 입장시간을 피한 시간에, 또는 휴관일에 했어야 할 일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려니 싶다가도 나 몰라라 식으로 안내판 하나 없이 관람객을 불편하게 만든 일에 매우 화가 난다. 최소한, 사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객들에게 고지를 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 않는가.
 일단 '방송'이라고 팔면 무소불위가 되는 상황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촬영한다는 말에 누구도 불편을 말로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품계석 한 번 못보고 옆길로 돌아가는 사람들, 양해와 협조를 구하기는커녕 고압적인 자세로 손가락질이나 하는 안내요원.
 이전에 방송용 드라마 촬영장을 지나면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한 카페에서 진행되는 촬영은 보도와 차도까지 점거한 채였고 거기에 스타를 보려고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길을 지날 수조차 없었다. "좀 지나갑시다." 하니 역시 촬영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얌전히) 지나가는 건 된다고 허(許)한다. 남의 집 땅도 아닌 보도를 불법 점거한 사람이 가라마라 하는 상황이 참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맛이 어떤지 뭐가 어떤지 물어오거나, 바쁘다고 손사래를 쳐도 인터뷰에 응하라며 손목잡이를 하는 거리에서의 실랑이 정도는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방송 편성을 보면 점입가경이다. 주말 프로그램을 보자. 낮에는 주중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재방송으로 몇 시간, 저녁 황금시간대엔 그 나물에 그 밥인 듯한 사람들이 방송 3사를 넘나들며 말장난과 농담 따먹기로 채널을 점령하고 있다. 유일한 낙이자 친구인 TV에게마저 소외당한 쓸쓸한 노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정말 너무 한다'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방송의 힘과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늘 깨어 있어야 할 이유다. 그래서 '방송'은, '방송'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방송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언제 어디서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송만능주의'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중부일보 200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