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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대선공약과 대학입시
[fn시론] 대선공약과 대학입시
- 노동일 (법학77/ 29회) / 경희대 교수 -
선거의 계절은 분명한 모양이다. 대선 후보 진영과 연계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이익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약 사항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민주사회에서 주권 행사의 기회인 선거를 나름대로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요구의 반영 정도에 따라 지지 혹은 반대 후보를 찾는 것은 도를 지나치지 않는 한 불법·탈법 로비의 기회를 찾는 것보다 권장할 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대선 교육공약 10대 과제’도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총은 차기 정부가 교육발전을 위해 추진해야 할 핵심 사항을 선정, 각 대선후보 진영에 실천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신임 이원희 교총 회장은 이미 “교육이 정치 권력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원들의 의지를 결집해 오는 12월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의 취임사를 한 바 있다.
대선 후보들이 교총의 발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17만여명에 이르는 회원 수 때문만은 아니다.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교원들의 영향력은 타 직업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육문제는 온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이다.
‘교육 대통령’을 표방하는 후보가 있을 정도다. 교육은 계층·지역·이념 논쟁과 맞물려 휘발성이 강한 주제인데다 누구나 한 마디씩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유권자들의 전문분야(?)이기도 하다. 교육 문제야말로 이익단체 차원이 아닌 국민적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까닭이다.
교총의 요구에는 경청할 부분이 많다. 국내총생산(GDP)의 6% 교육재정 확보와 교육여건 개선, 대학교육의 자율화 및 국제경쟁력 제고, 교원법정정원 100% 확보 및 주당 적정 수업시수 법제화, 교직의 전문성 강화, 교육복지 확충 및 평생학습체제 활성화 등은 어떤 정부라도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이 정치권력의 이념에 의해 좌우되는 폐단을 시정해야 한다는 인식에도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사학법 개정, 교원정년 문제 등 극단적 의견 대립을 재연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입시는 그 중 하나이다.
10대 과제 중 ‘대학입학제도 개선 및 사교육비 경감’ 부분에서 한국교총은 다음 대통령에게 이른바 3불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대학 본고사는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고교 등급제는 금지하되 대신 학생들의 객관적 학업성취 수준을 대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의 경우 시기상조지만 논의는 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3불정책의 가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만으로도 지면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점은 입시를 둘러싼 논란이 대선 국면에서 되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대학입시는 교육 문제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논쟁 구조는 마치 입시가 전부인양 착각할 정도다. 수능 난이도 등 입시문제를 둘러싼 논란, 연례행사인 정부의 입시제도 개편, 입시를 두고 벌이는 학교와 정부의 힘겨루기, 진보·보수 단체 간 입씨름 등은 한 해도 거르지 않는다.
물론 입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입학증과 졸업장이 동일시되는 교육체계, 대학졸업장이 일생을 좌우하는 사회구조, 아무리 안일한 교육을 시켜도 변함없는 대학의 서열구도 등은 입시에 올인하게 하는 복합적 원인이다.
그럴수록 입시문제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해결책 모색과는 거리가 더 멀어질 따름이다. 병의 근원을 찾는 대신 해열제만 찾는 격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결과보다 1점이라도 성적 낮은 학생이 입학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대학들에게 입시 커트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선진국 대학들은 먼 얘기일 뿐이다.
교육의 공적 성격은 외면한 채 내 자식만 찾는 부모들의 이기심을 제쳐놓고 사교육과 입시문제 해결을 논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만’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입시 논쟁 덕분에 교육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입시는 입시일뿐이다.
[[파이넨셜뉴스 200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