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이택광-卞·申이 진짜 보여준 것
[시론]卞·申이 진짜 보여준 것
- 이택광 / 경희대 교수·영미어학부 -
갑자기 사건의 양상은 학력위조에서 섹스스캔들로 바뀌어버렸다. ‘신정아 게이트’라는 표현 자체가 이 사건의 스펙터클을 더욱 자극한다. 상류층 인사들이 신정아라는 ‘팜므 파탈’을 두고 치정극을 벌인 것처럼 몰고 가는 분위기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국면. 신정아씨에 쏠린 관심 때문에 여권 대선후보 경선에 차질이 빚어져서 검찰이 이 사건을 빨리 종결지으려 한다는 소문도 있고, 그 반대로 야당이 여당의 대선구상을 망쳐놓기 위해서 신정아 스캔들을 부풀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말들도 각양각색이다.
-내용없는 스펙터클 잔치 전락-
그러나 그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신정아씨에 대한 언론의 전언은 언제나 뜬금없다. 오늘은 동국대 이사장이 신정아씨에게 거액을 줬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어떻게 줬는지 알 길이 없다. 이사장이 아무리 해명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 언론은 이런 욕망에 화답하고, 이야기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 미궁에서 길을 잃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이 사건이 어떤 의미에서 이토록 중요한 사안인가? 정치권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용해먹든, 그건 시간이 지나면 시시비비가 가려질 문제다.
여기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건 이 사건이 이른바 한국 미술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신정아씨는 변양균씨를 ‘예술적 동지’라고 불렀는데,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이 말하는 미술이라는 게 두 사람의 스캔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 난다. 내가 보기에, 이 대목이 훨씬 의미심장하다. 이 둘이 어떤 사이이든, 이 둘이 연인 사이라는 그 ‘결정적 물증’이 무엇이든, 변양균씨가 신정아씨에게 노골적인 e메일을 보냈든 말든, 오직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예술을 위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적이고 은밀한 관계로 인해 신정아씨는 시장성 있는 ‘스타급’ 큐레이터로 포장될 수 있었던 거다.
도대체 이들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그 예술은 무엇일까? 사실 예술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신정아씨와 변양균씨의 예술은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하다. 신정아씨가 ‘예술’을 위해 한 일이라곤, 원로들에게 싹싹하게 대하고, 변양균씨 같은 고위급 공무원과 뜻을 모아, 돈도 벌고 명성도 쌓은 거다. 신정아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는 문제와 이 문제는 엄연히 다른 사안이다. 오히려 후자가 더 긴박하고 심각한 건지도 모른다. 법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계에 이런 사적 관계의 은밀한 거래를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걸 이번 사건은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와 더불어 명문대 학벌이 경쟁의 도구로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한다는 세간의 믿음을 재확인시켰고, 엉뚱하게도 방송 연예계에 허위학력 문제가 만연해 있다는 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런 걸 보면, 신정아 사건의 후폭풍은 참으로 거셌다. 평소에 신정아가 누군지도 몰랐던 애먼 이들이 파편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허위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곽의 실체가 드러났던 거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한 반성도 없이, 오직 언론은 이 사건을 스캔들로 만들어 세간의 시선을 더 끌어보고자 열성을 부리고 있다. 이게 정치적인 꿍꿍이 때문이든, 아니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순수한 기자정신 때문이든, 이 사건은 이제 내용 없는 스펙터클의 향연으로 전락해버렸다.
-인맥에 휘둘린 미술계 현실-
예술이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적이 없는 한국에서 이번 사건은 필연적으로 예견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어떤 미술인은 신정아씨 때문에 그나마 성장의 기미가 보이던 미술계가 초토화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성장의 기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이번 사건이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한다. 지금 한국 미술에 필요한 건 성장이라기보다, 미술계가 사사로운 인맥과 금전주의에 휘둘리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이번 사건은 웅변하고 있는 거다.
[[경향신문 2007-09-20]]